나이를 먹으니,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다.
불변의 진리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안 좋아하고. 날 좋다는 사람은 잘 없고. 어떻게 다들 그렇게 연애를 잘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결국 남는 선택지는 소개팅이다. 아, 벌써 어색하다. 어떻게 연락을 시작해야 하지? 뭘 물어볼까? 주민센터도 아닌데, 호구조사부터 시작해야 하나? 만나기 전에 괜히 연락만 많이 하면 텐션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나갔다가 시간만 낭비하는 게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나도 소개팅 경험은 잘 없다. 글을 써야 하니 공부했고 찾아봤다. 친구들에게 물어도 봤다. 심지어 소개팅 나가서도 물어봤다.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지금 이 정도 긴장감은 괜찮은지. 까이기도 많이 까였다. 읽씹도 당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데, 전치 12주가 넘는 고통과 이불킥을 겪었다. 그래서 강해지기로 했다. 외모가 안 되니 다른 무기를 장착하기로.
결혼 정보 회사 가연에서 미혼남녀의 소개팅 심리를 분석한 설문 자료에 따르면 애프터 결정 요인의 48.7%가 ‘대화 코드가 잘 맞는 것’이라고 한다. ‘취향에 맞는 외모’ 21.4%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외모보다 대화라고? 나 같은 흔남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통계는 아닐까? 잘 맞는 대화 코드는 대체 몇 볼트지? 전압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질문이 중요하다.
오는 데 힘들진 않았어요?
식상하다고? 대화 초반의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기에 이만한 게 없다. 자연스럽게 소개팅 전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왔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분은 어땠는지 등을 들을 수 있다. 물 흐르듯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도 수월하다.
귀걸이가 예쁜데요?
손톱의 네일아트나 목걸이, 브로치, 머리 스타일, 피부 톤, 목소리, 뭐든 칭찬거리를 찾아보자. 작은 칭찬은 긴장을 풀어 준다. 이때 외모 전체를 칭찬하기보다 작은 것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그날 그 사람이 신경 쓴 패션 아이템이 제일 무난하다. 다만 칭찬의 크기를 부풀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처음부터 과하게 칭찬을 하면 받는 사람도 어색하고 불편하다.
이번 휴가는 다녀오셨어요? 다음 휴가는 어디로 가고 싶어요?
휴가를 상상하면 누구든 기분이 편안해진다. 정치, 범죄, 자연재해, 주식 얘기로 분위기를 우중충하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낫다. 더불어 상대가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지도 알 수 있다. 서로의 취향과 흥미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딱딱하게 “취미가 뭐예요?”라 물었을 때 보다 답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부담이 덜하다. 휴가 얘기 다음에는 취미, 전공, 업무, 일상, 여행, 음식, 소개팅 주선자와의 관계, 관심사, 반려동물 등으로 자연스럽게 주제를 뻗어 나가면 된다.
오? 저도 그런데.
소개팅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나와 다를 확률이 크다. 자라온 배경부터 지금의 환경까지 다른 게 훨씬 많을 거다. 그 차이의 간극을 좁히려면 공통 관심사를 빠르게 확보해야 한다. 자칫 ‘나도 그거 알고 있음’ 식으로 지식 배틀을 하면 곤란하다. 상대가 이야기를 편안하게 계속할 수 있도록 ‘나도 그거 좋아해’ 정도의 관심이면 된다.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보다 에너지를 적게 소모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처음 듣는 내용을 기억하고 타이밍에 맞춰 리액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도 그런데!’를 던지려면 고도의 집중력과 센스가 필요하다.
최근에 무슨 영화 봤어요?
영화 얘기가 나왔다면 “영화 좋아해요?” 보다 “최근에 무슨 영화 봤어요?”가 낫다. 전자의 질문이 ‘네’와 ‘아니요’로 끝난다면 후자에서는 열린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때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뭐예요?” 같은 질문보다는 최근 본 영화를 묻는 게 자연스럽다. 다짜고짜 최고의 영화가 뭐냐는 질문을 던지면 이동진도 빨간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당황할 거다.
둘 중에 어디가 좋아요?
“밥 먹고 어디 갈래요?” 물으면 십중팔구 “아무거나 괜찮아요”라고 대답한다. 선택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자. “여기 근처에 커피가 맛있는 집이 있고 케이크가 맛있는 집이 있어요. 그리고 꼬치구이가 정말 맛있는 선술집도요. 셋 중에 어디가 좋아요?” 이 정도면 됐다. 이제 뭐 거의 사귈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