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늘 같은 풍경을 마주했다. 건물 유리창에 비친 초췌한 얼굴, 손에 힘없이 쥐어진 가방, 그리고 쏟아지는 피로감.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와 빌라. 근데 그 많은 것 중에 내 이름으로 된 건 하나도 없다는 허무함에 기운이 빠졌다. 티끌 모아 티끌인데, 월급을 모아 집을 살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업무에 치여 살았으면서도, 정작 집에 돌아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침대에 몸을 던져 그대로 잠들어버리고 싶었다. 근데 또 막상 그렇게 하루를 끝낼 순 없었다. 그러면 왠지 허무한 감정이 진하게 들었다.
회사에서는 모두가 날 찾았다. 능력자여서 그런 건 아니고 어쩌면 만만해서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자리가 문 앞이라 그런가 퀵 아저씨도 날 보고 물건을 찾았고. 회사에 방문하는 사람도 나에게 길을 물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정 속에서 할 일이 끊이지 않는데, 퇴근 후에는 시간의 흐름이 이상할 정도로 느려졌다. ‘이제 내 시간이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손에 잡히는 건 리모컨, 혹은 스마트폰뿐. 무작정 SNS를 뒤적이며 남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엿봤다. 한없이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내 자존감도 내려갔다. SNS는 다른 사람 일상의 하이라이트라는 걸 알면서도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친구들은 퇴근 후 요가를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자기 계발을 한다는데, 나는 그저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무력감은 점점 더 깊어졌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나중에는 뭐 해 먹고살지?'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루하루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됐다. 주말이 되어도 피곤함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면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을 것 같았고, 무엇을 시작하든 금방 지칠 것 같았다. 슬프게도 불러주는 친구가 없기도 했다.
나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우선 집에 돌아와 바로 침대에 눕지 않기로 했다. 그것만으로 많은 게 바뀌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오늘 하루를 되돌아봤다. 가끔은 책도 읽었다. 처음에는 한 장, 다음 날은 세 장, 그리고 또 한 챕터. 처음엔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지만, 하루의 끝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씩 위안이 되었다. 가끔은 짧은 글을 쓰거나,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움직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시간을 내니,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얼마 전에는 피트니스 센터를 끊었다. 언젠가는 내 복근에 빨래를 하겠다는 행복회로를 돌렸다.
물론 여전히 피곤하고, 가끔은 무기력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일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은 뭐라도 하니까 뭐라도 되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날 쌓인 스트레스는 바로바로 풀자. 퇴근 후 해볼 만한 7가지를 찾아봤다.
뇌 쉬어주기
심리학자 마크 비어드(Mark Beaird)는 “뇌를 쉬게 하는 시간은 스트레스 해소뿐만 아니라 창의성 회복에도 큰 도움을 준다”라고 했다. 퇴근 후에도 머릿속에서 업무 생각이 멈추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인지 부하(Cognitive Load)’를 줄이기 위해서는 퇴근 후 30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멍을 때리거나 음악을 들으며 쉬는 등 가벼운 활동을 하는 게 좋다.
운동하기
냉장고까지 갈 기운도 없는데 운동을 하라고? 운동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다. 2019년 미국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연구에 따르면,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을 낮추고 기분을 좋게 하는 엔도르핀(Endorphin)을 분비시킨다고 한다. 가볍게 산책하거나 요가, 필라테스, 러닝, 사이클, 웨이트 등의 운동을 퇴근 후 루틴으로 만들어 보자.
디지털 디톡스
퇴근 후에는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자.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면 스트레스가 계속 쌓일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루라이트는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한다. 하버드 대학교 연구에서는 자기 전 최소 1시간 전에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라고 권장했다. 대신 책을 읽거나 아날로그적인 취미 활동에 집중해 보자.
가까운 사람과 대화
2020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는 스트레스 해소와 감정 조절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가족이나 친구와 저녁을 함께 하거나 전화 통화를 통해 하루를 정리해 보자. 단, 부정적인 이야기는 가급적 피하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길 추천.
따뜻한 물로 샤워
퇴근 후 따뜻한 물로 샤워하거나 반신욕을 하면 신체가 이완되며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감소한다. 일본 효고현립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38~40도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은 심박수를 안정시키고 깊은 수면을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따뜻한 물에 아로마 오일을 몇 방울 첨가하면 기분이 훨씬 나아진다.
일기 쓰기
자기 전에 오늘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며 좋았던 점을 떠올려 보자. 심리학자인 조슈아 스미스(Joshua Smith)는 “하루를 정리하고 감사한 점을 적는 것은 스트레스 요인을 재해석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형성하는 데 효과적이다”라고 했다. 일기를 쓸 때는 걱정보다는 감사한 일에 초점을 맞춰 보자.
규칙적인 수면 루틴 유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면 잘 자야 한다. 2022년 워싱턴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수면 부족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높이고 다음 날 업무 효율을 떨어뜨린다고 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며, 침실 환경을 어둡고 조용하게 만들면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