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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Dec 10. 2018

기억 여섯. 퀸

심히 흥겨웠던 쿵쿵짝의 리듬

설명이 필요 없는 그룹 퀸(Queen)의 전기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가 개봉 후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개봉 40일 차 현재, 누적 관객수 700만을 넘기며 국내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각종 음원차트에 퀸의 음악이 다시 순위권에 오르고 TV 프로그램 특별기획 편성도 줄을 잇고 있다.


물론 나도 영화를 보긴 했지만 퀸이라는 그룹에 대한 향수는 윗세대의 그것만 못하다. 나는 그들을 잘 알지 못한다. 퀸이 라이브 에이드 공연 무대에서 폭발적 기량을 쏟아내던 당시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강렬한 음악은 어느새 내 기억 속 한 구석을 파고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선생님 허락을 받아 반에서 우리끼리 조그맣게 장기자랑을 하기로 했다. 얼마 전에 전학 온 친구 현진이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죽이는 노래 있는데 같이 한 번 해보겠냐고.


그러면서 들려준 노래가 바로 퀸의 <We Will Rock You>였다. 얼핏 들어도 미친 퀄리티의 음악에 소름이 쫙 돋았지만 짐짓 아닌 척하며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친구가 생각한 장기자랑 아이템은 립싱크였다. 본인이 스탠드 마이크를 쥐고 보컬 역할을 할 테니 나는 옆에서 쿵쿵짝 소리에 맞춰 발구르기와 손뼉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 좁은 교실에서 립싱크라니. 게다가 나는 그 옆에서 들러리나 서라고? 남 앞에 나서는 거야 원래 싫어한 성격이었지만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남 들러리는 더 하기가 싫었다. 나는 현진이의 제안을 끝내 거절했다.


시간이 흘러 공연 당일, 모두가 짐작하는 대로 무대는 대박이 났다. 그날 장기자랑의 백미를 꼽으라면 단연 '현진이와 아이들'이었다. 현진이는 나 말고 세 친구나 더 섭외를 했고, 가운데 현진이를 두고 위치를 바꿔가며 쿵쿵짝 박수를 치는 세 친구의 퍼포먼스는 내가 봐도 꽤나 근사했다. 퀸의 카리스마 넘치는 음악과 현진이의 격정적인 립싱크, 그리고 세 친구의 네박자 퍼포먼스까지 모두 완벽하게 합을 이루자, 관객석에서 조용히 전율을 느끼던 나는 왠지 현진이에게 진 것 같은 못난 기분이 들었었다.


그때부터 현진이가 뭔가 다르게 보였다. 묘하게 멋있고 듬직하고 형 같았다. 비싸게 굴지 말고 하자고 할 때 할 걸 하고 후회했지만 한 번도 그런 속내를 비치진 않았다. 그저 멋있었다, 잘하더라고 몇 마디 건넨 게 다였다. 그리고 2학기 때 나는 전학을 갔다.


새 학교에서 정신없이 지내던 어느 날 나는 현진이가 부르던 쿵쿵짝이 떠올라 무슨 노래인지 알아낼 방법을 고심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그 노래를 아는 사람이 없을 테니 기회 있을 때 내가 부르면 스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웬걸. 쿵쿵짝 리듬만 가지고 수소문을 한지 몇 분 만에 노래의 주인과 제목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때 알았다. 퀸이 유명한 가수였다는 걸. 그럼 그렇지. 이렇게 흥겨운 리듬을 나만 알고 있을 리가 없지. 망연자실한 나는 그렇게 다시 겸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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