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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Dec 06. 2018

기억 다섯. 위인전

짧은 독서감상문

어릴 때 낡은 책 종이에 코를 박고 냄새 맡길 좋아했다. 그 텁텁한 냄새에 파묻혀 책을 읽기도 좋아했었다. 언젠가 엄마가 바랜 갱지 같은 중고 위인전집 20여 권을 사 오셨을 때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위인전을 읽으면 사람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위인들의 삶은 어릴 적부터 비범했다. 비범하게 뛰어나거나 비범하게 모자랐다. 모자랐던 인물들은 그 모자람을 뒤집어 결국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하지만 평범한 내게 위인의 굴곡진 삶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위인전에 실린 교훈대로라면 나는 위인은커녕 그 안에 나오는 한심한 엑스트라보다도 못한 것 같았다. 그러다 중학생쯤 된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위인들의 어릴 적 에피소드는 어떻게 그렇게 자세할 수 있었을까. 아이가 위인이 될 거란 걸 미리 알고 따라다니며 관찰한 듯한 정밀묘사는 과연 누구의 작품인가.


거짓말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말이 됐다. 위인전이 주는 교훈이란 것도 사실 다 고만고만하지 않던가. 그건 편집된 삶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선 따뜻한 종이 냄새 대신 악취가 났다. 약자 편에 서는 위인들보다 더 큰 힘으로 군림하는 강자들이 있었고, 그 힘에 압도된 사람들이 간신히 제 몫의 숨을 쉬며 납작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 각각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할까.


엄마는 여전히 위인전의 힘을 믿었다. 역사를 아는 사람은 그릇된 길로 갈 수 없다고 했다. 지금 세상이 나쁘게 돌아가는 건,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들이 역사를 등한시하기 때문이었다. 맞는 말이라 생각하면서도 의문이 남았다. 그럼 나쁜 과거를 지닌 사람들이 오히려 떵떵거리며 사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건 우리가 역사를 아냐 모르냐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처럼 느껴졌다. 결국 위인전에 담긴 정의로운 교훈은 나의 경험과 너무도 달랐고, 언제부턴가 나는 위인전을 읽지 않았다. 위인전은 꿈같은 이야기였고, 나는 그런 꿈을 믿을 정도로 순진하지도 않았다. (딱 한 권, 유관순의 전기는 달랐다. 어릴 적의 위인전집에서 지금까지 건져 올릴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긴 책은 「유관순」뿐이었다.)


위인의 전기가 얼마간의 각색을 거쳐 완성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위인의 어릴 적 에피소드 또한 대부분 픽션일 것이다.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무용담과 입지전은 그 자신의 미화된 기억에 의해 더욱 완벽해지기 마련이므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이 어린아이들에게 어떤 모범적인 인간상과 불굴의 의지, 그리고 낙천적인 세계관을 강요하는 어두운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윤리적인 압력에 불쾌감을 느낀 것도 나 혼자만의 경험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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