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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Dec 04. 2018

기억 넷. 대낮의 별

누런 하늘에 창백하게 빛나던

'하늘이 노랗다'는 말은 관용어인 줄만 알았다. 사람이 쓰러지기 직전까지 가면 실제로 하늘이 노랗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건 17살 때 처음 알았다. 찌는 듯한 여름날 아침, 학교 운동장에서 애국조회가 있었다. 그날 무슨 이유에선가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교실에 있어도 됐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학창 시절 나는 웬만한 일은 참고 견디는 학생이었다. 책임감 때문은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든 눈에 띄는 걸 지독히 싫어했을 뿐이다. 몸이 아프다고 애국조회에 혼자 빠지는 학생으로 비치고 싶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 훈화가 길어지면서 점점 서있기도 힘들 지경이 됐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가 멀게 들렸다. 이러다 정말 쓰러질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조금만 더 참고 버티면 금방 끝날 것도 같았다. 발끝을 내려다보며 쓰러지지 않는 것에만 집중했다.


불행하게도 그날따라 조회가 유독 길었다. 뜻도 모를 말들이 파편처럼 귀에 박혔고,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지쳐버렸다. 이제 끝이다 싶었던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긴 시간 처박고 있던 고개를 뒤로 젖히자마자 눈앞에 아득하게 노란 하늘이 펼쳐졌다. 아니, 노랗기보다 누렇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모노톤의 드라마처럼 둔탁한 누런색이 거짓말처럼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아, 이래서 하늘이 노랗다고 했구나.


9년 전쯤, 신병교육대 입소식 전날이었다. 입소식에는 투스타 사단장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말로만 듣던 투스타의 위엄은 단지 말로만 끝나는 게 아니었다. 사단장이 납시기 하루 전, 나를 포함한 수백 명의 훈련병들은 하루 종일 입소식 리허설에 시달려야 했다. 조교들이 털끝만 한 흐트러짐도 쥐 잡듯 잡아냈기 때문에 훈련병들은 극도로 곤두서 있었다. 그런데도 꼭 실수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이라도 틀리면 다 같이 얼차려를 받았다. 팔 벌려 뛰기에서 곧잘 생략되는 마지막 구호처럼,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모든 절차를 칼같이 맞추어 연습했다. 같은 절차를 수십 번 반복하는데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에선 구호를 붙이면 안 되는데, 번갈아가며 구호를 붙여대는 몇몇 훈련병들이 원망을 넘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또다시 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고등학교 애국조회 때와 정확히 같은 과정을 거쳐 나는 쓰러지기 직전의 그로기 상태가 됐다. 그때처럼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젖혀 위를 봤다. 애국조회 때와 다른 점은 이곳이 높은 천장으로 막힌 실내라는 것, 그리고 조교들의 으름장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나지막한 욕지거리와 함께.


그때 두 번째로 누런 하늘을 봤다. 이번엔 누런 천장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거나 온통 기분 나쁜 누런색으로 덮여버린 시야를 보고 있자니 그만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구토를 참아내느라 몸을 숙여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는데 조교 한 명이 다가와 나를 부축해 열외시켰다. 잠시 눈을 감고 앉아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른 훈련병들이 모두 엎드려있었다. 패배감이 밀려왔다.


참담한 기분으로 시선을 옮겨 단상을 바라보는데, 뜻밖에 별이 보였다. 연습을 위해 단상 위에 사단장 대신 올려둔 조악한 별 모형이 창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직도 누런 시야가 완전히 사위어들지 않아선지 그 별이 나보다 더 볼품없이 창백해 보였다. 그토록 초라한 별이 거인처럼, 말없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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