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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열. 게임

지는 습관이 만들어준 태도

by 달리

나는 게임에 재능이 없다. 재능이 없으니 흥미도 없다. 어릴 땐 그런 줄도 모르고 게임에 열중했다. PC방이란 것이 전국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던 초등 고학년 시절, 한 시간에 2000원이나 하던 읍내 PC방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하교 후 친구들과 함께 PC방으로 몰려가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가 가장 즐거웠다. 대부분 졌는데도 그랬다.


생각해보면 컴퓨터로 하는 게임에만 소질이 없는 게 아니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형과 함께 했던 바둑, 장기, 체스 경기에서 이겨본 기억이 없다. 이쯤 되면 소질이나 재능의 문제라기보다 당시 나란 아이의 두뇌 능을 의심해볼 문제일 수도 있다. 아무리 두 살 터울 형이라지만,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는 건 이상하니 말이다.


물론 내 두뇌는 이상 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사용 방식이 조금 달랐던 것뿐. 나는 게임 시작 전부터 게임을 하는 내내 철저히 지는 방향으로만 뇌를 시뮬레이션했다. 첫 수를 두는 순간부터 패배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있었고, 역시 이번 게임도 질 것 같다는 패배감에 미리 사로잡혔다. 그렇게 나는 매번 지는 연습을 했고, 내 두뇌는 나를 패배하게 만드는 데에는 언제나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다.


언제부턴가 지는 것은 습관이 되었고, 다른 습관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며 더욱 단단해졌다. 나는 십수 년간 게임에서 지는 방법을 익혀 하나의 패턴으로 내면화한 뒤, 정교한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두뇌 속에 단단히 저장했다. 그 결과 나는 지금도 내가 누군가와 정면 대결하여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못한다. 객관적, 논리적 근거가 없는데도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다. 반면 내가 질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나 쉽고 자연스럽게, 때로 무의식적으로 내 안에 스민다. 역시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렇다고 허구한 날 패배주의에 찌들어 사는 비관론자는 아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자연스럽다고 느껴지는 분야는 주로 일대일로 대결하는 게임이나 내기에 한정된다. 다행히 삶의 가치는 대결에서의 승리로만 입증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삶 주변의 빈터에, 나는 대결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관계들을 재료로 삼아 긍정적 가치관을 채워 넣을 수 있었다. 지금 내가 가진 자신감은 남을 이기고 누른 경험에서 온 게 아니었다.


요즘 들어 간혹 나도 모르게 승부욕에 시동이 걸리는 경우가 있다. 대개 타인을 차갑게 경멸하는 마음이 불러오는 오만한 자기 과시욕구일 뿐이다. 건전한 승부욕으로 나와 다른 사람에게 시너지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싶었건만. 됨됨이가 부족한 탓이다. '나답지 못하다'는 말이 자의식 과잉을 증명하는 수사처럼 굳어져버려 안타깝지만, 못난 마음으로 불필요하게 감정을 소진하는 나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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