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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열하나. 누명

돈에 얽힌 짤막한 사연

by 달리

초등학교 5학년 땐가. 어느 날 수중에 3만 원이란 거금이 생겼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딘가에 내야 하는 돈은 아니었다. 분명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이었고, 그렇기에 몇 날 며칠 그 돈을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며 들떴었던 기억이 난다.


같은 시기 하루는 같은 반 친구가 갑자기 돈을 잃어버렸다고 울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 액수가 정확히 3만 원이었고, 3만 원이란 당시 초등학생이 쉽게 만져볼 수 없는 큰돈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눈을 감으라고 한 뒤 돈을 가져간 사람은 조용히 손을 들라고 하셨다. 나는 태연히 눈을 감은 채로 친구가 분실한 돈과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이 우연히 일치한다는 사실에 약간 흥분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선생님은 우리에게 전부 일어나 교실 뒤로 가서 서게 했다. 이어서 가방과 책상 서랍을 하나하나 직접 확인하셨는데, 거기서도 안 나오면 우리 주머니까지 털 기세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친구가 잃어버린 돈과 확히 같은 액수(무려 3만 원)의 지폐가 내 주머니에서 나온다면? 그대로 있다간 꼼짝없이 도둑으로 몰릴 판이었다.


틀림없이 내 돈이고, 며칠 전부터 가지고 다녔으며, 정 의심스러우면 부모님께 확인해보셔도 된다 말하면 문제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조마조마한 상황 속에 갇힌 초등학생에게 이성적으로 판단할 여유 따윈 없었다. 걸리면 끝이란 생각뿐이었다. 돈은 돈대로 뺏기고, 손버릇 나쁜 거짓말쟁이로 소문날 거란 위기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뒷골이 서늘하도록 식은땀이 났다. 누가 봤다면 영락없이 범인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 안에 담긴 지폐 몇 장을 있는 힘껏 구겨 쥐었다. 이어서 약간의 텀을 두고 돈을 꺼내 청소도구함 뒤쪽 빈 공간에 슬쩍 흘렸다. 다행히 아무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친구들이 초집중모드로 선생님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방과 책상을 모두 확인한 선생님은 우리 호주머니를 모두 뒤집어 밖으로 꺼내 보이라고 하셨다. 끝끝내 돈은 나오지 않았다. 두려운 시간이 지나간 뒤 나는 떨리는 팔다리를 가까스로 추스르며 생각했다. 정말 죽을 뻔했구나. 아니, 근데 처음부터 내 돈이었는데 도대체 왜? 나는 왜 위험을 무릅쓰고 그 돈을 청소함 뒤에 숨겼을까.


그날 이후로 한동안 나는 학교에 돈을 갖고 다니지 않았다. 아무 죄가 없어도 정황상 유력한 범인으로 몰려 변명 한 마디 못하고 죄를 뒤집어쓰게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실제로 죄를 짓고 벌을 받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꽤나 어린 나이에 경험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 더, 누군가를 함부로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그건 분명 돈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값비싼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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