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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K, 딩크란 무엇인가

어느 딩크족의 혼잣말

by 달리

딩크. 이제는 신조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꽤 나이 든 말이고, 그만큼 익숙한 말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겐 아직도 불편하게 느껴지는 말이기도 하다. 왜일까.


딩크(DINK)는 Double Income No Kids, 말 그대로 무자녀 맞벌이 부부를 일컫는다. 이 맥락에서 무자녀는 물론 무지출이라는 경제적 개념으로 이해된다. 딩크라는 표현 자체가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억 소리 한두 번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철저히 경제적 계산에서 출발한 개념이니까. 즉, 부부가 함께 두 배로 벌면서 돈 나갈 곳은 원천봉쇄하겠다는 뜻 되시겠다. 이러니 딩크라는 개념에 대해 특히 기성세대의 반감이 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인과가 언뜻 이해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조금 더 풀어써보겠다. 왜 어떤 사람들은 딩크족을 못마땅해하는가.


딩크족이란 '어쩌다 보니', 또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신념에 따라' 그렇게 살기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능동적으로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이유는 다음 세대에 내 유전자 사본을 퍼뜨리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양가의 화목한 결합 같은 것도(물론 그러면 좋긴 하겠지만) 관심 밖이다. 이들은 온전히 서로에게 충실하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더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결혼한다. 따블로 벌고, 애는 안 낳고, 이런 공식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바로 이 태도다. 삶의 방식을 결정할 권리는 그 삶을 살아가는 주체에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판단에 내 삶의 본질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기성세대 관점으로는 좀 유난스러워 보일 수 있다. 요즘 세상에 누가 그렇게 심하게 간섭한다고 굳이 딩크라는 말까지 만들어가며 잘난 척인가 싶을 수도 있다. 게다가 아무 참견도 받지 않고 자기네끼리 알아서 살겠다니. 가족들의 걱정, 친척들의 관심, 지인들의 조언이 다 필요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쯤 되면 세상이 그렇게 자기네 상상 속 꽃밭처럼 호락호락한 줄 아는 겐가 싶어 불쾌해지기까지 한다.


자, 그렇다면 나는 딩크족의 일원으로서 이런 오해들에 맞서 적극적으로 해명할 의무가 있기는 쥐뿔 아무것도 없다. 몇 번은 진지한 자세로 길게 얘기도 해봤는데 그럴 때마다 주제는 언제나 상대방 주도하에 곁가지로 새어 버리고 만다. (물론 내 견해를 진지하게 수용하고 존중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내게 딩크족으로서의 입장 '해명'을 요구하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 곁가지 중 꽤 인상 깊었던 것 몇 가지를 꼽자면 대체로 이렇다. '아이가 주는 기쁨', '아이를 통해 겪게 되는 나 자신의 성장', '출산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삶', '배우자와 다시금 새롭게 시작되는 사랑(또는 전우애)', '가족의 완성과 진정한 행복'. 이런 말들이 다 무가치한 헛소리라는 건 아니다. 나는 나에게 이런 말을 들려준 사람들의 선의와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기네 아이를 통해 저런 값진 것들을 얻어냈다는 사실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도 그 얘기들이 내게 곁가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적어도 이 맥락에서는) 변하지 않는다.


이해가 안 된다면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 (역지사지는 내가 다툰 어린이들을 진정시킬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인데, 어른들에게도 정확히 같은 효과를 준다.) 어떤 사람이 아이가 주는 기쁨과 축복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내가 '아이가 없는 결혼생활의 풍요로움', '내 삶과 나의 행복을 스스로 존중하는 방식', '학습된 모성애(또는 부성애)의 사회적 해악', '우리나라 부모들이 갖는 교육투자심리의 문제점', '효에 대한 강박이 일으키는 부채의식과 죄책감', '타인에 의존하지 않는 건강하고 독립적인 삶의 가치'를 역설하면 기분이 어떨까. 내가 아무리 선의와 진정성으로 충만해 있어도 상대 입장에서는 절대로 좋은 대화라고 느낄 수 없다. 왜? 저런 말들은 상대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이 도식에서 어느 쪽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까. 편 가르기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나는 딩크족이 평소에 유난은 좀 떨지언정, 아기 키우는 부모에게 직접적으로 훈계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본다. 반면 딩크족이 설득의 타겟이 되는 경우는 그보다는 흔한 것 같다. 내가 처음 딩크족으로, 아니 적어도 노키즈 족으로 살겠다고 선언했던 때가 27~28살 때였는데, 철 모르고 나불대다 만나야 했던 수많은 훈계와 질책이 나만의 특수한 경험은 아닐 것이므로.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걱정과 관심, 조언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 가치관을 부정당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썩 유쾌한 경험이 될 수 없다는 상식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딩크족이 될 필요는 없지만 모두가 딩크족의 견해를 존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선에서 모두가 모두에게 정중하기를, 혼잣말로 중얼거려 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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