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시작되는 곳
좋아하면서도 만족하지 않는 것
나는 내가 쓴 글을 좋아한다. 잘 썼든 못 썼든 일단 좋아하고 본다. 포털 사이트에 블로그를 개설하여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쓴 글을 수십 번 반복해서 읽었다. 이런 장문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그때는 내가 글쓰기에 뛰어난 재주가 있는 줄 알았다. 매일 써도 글감이 마르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직업을 가질 기회가 온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는 한 선배의 질문에 진지한 표정으로 '작가'나 '칼럼니스트'라 대답했다.
하지만 어쩌다 좋은 생각이 떠올라 글을 쓰는 것과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었다.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있으면서도 쓰는 날보다 쓰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욕구만으로 글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써야지 하는 마음으로 남겨둔 짤막한 메모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를 만큼 오랜 날이 흐른 후에야 버려졌다. 나는 내 생각보다는 글을 잘 쓰지 못했다.
생각만큼 글이 써지지 않으니 요령이 늘었다. 글쓰기의 기초를 익히는 대신 어디서 본 듯한 문장과 기술로 허세를 부렸다. 언젠가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가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저장된 문서를 열어보고는 질색을 했다. 무슨 이런 가식적인 글을 쓰냐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일상과 동떨어진 글이 나를 아는 사람에게 어떻게 읽히는지 확인한 날, 나는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값진 사실을 배웠다.
아니, 생각해보면 꼭 글을 쓸 필요도 없었다. 몇 달씩 쓰지 않고도 삶은 잘만 살아졌다. 어린 학생들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쓰게 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정작 나는 그러지 않고도 그럭저럭 잘 지냈다. 써봤자 읽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글을 써서 몇 달만에 책을 내고 유명해진 작가들의 이야기가 귀를 찔렀지만 그 흐름에 섞여 어설프게 동요하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도도한 글을 혼자서 쓰고 있자니 되려 내 글이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안달하는지 궁금했다.
우선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논리적이고 섬세한 생각을 글로 풀어 전달하는 능력을 많은 사람에게 공식적으로 확인받고 싶었다. 처음 글을 쓸 때만 해도 금방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대와 다른 현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한 건, 현실이 냉담해도 글쓰기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꽤 긴 시간 동안 꽤 많은 글을 쓰고 나서 알았다. 인정받는 것이 글을 쓰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구나. 글을 써야만 비로소 채워지는 영역이 내 안에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도 써야 하는 것이 있었다. 글은 그런 나를 확인하고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도구였다. 잘 썼든 못 썼든, 나는 나를 이해하게 해주는 내 글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더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욕심에는 변함이 없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나만의 기준도 있다. 너무 깊은 회의와 반성은 적어도 아마추어의 글쓰기에는 좋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은 내 글을 나만큼 깊이 읽지는 않는다. 유명하지 않은 내 글을 몇 번이고 돌려 읽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다. 결국 아마추어의 글쓰기는 작가로서의 나와 독자로서의 내가 끊임없이 만나는 외로운 과정이다.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애정 어린 독자가 작가에게 날 선 비판만 해서는 금세 지쳐버릴 수 있다. 그저 내 글이 완벽하지 않다는 정도만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반대로 자기 글에 너무 도취되어 있어도 좋지 않다. 블로그 플랫폼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쓴 불만 섞인 글을 몇 개 보았는데 쉽사리 동의할 수 없었다. 사춘기 아이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과장된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무명의 작가들이 자기 글에 짐짓 과장된 수사를 붙이는 경향이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건 내 글을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섭섭할 일이 아니라 읽어준 몇몇 사람들에게 감사할 일이다. 타인의 글을 폄훼하고 내 글로 심술을 부려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로 인해 강화된 편향뿐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글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애정을 품은 독자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요컨대 글이 시작되는 곳은, 내가 쓴 글을 좋아하면서도 만족하지 않는 사이 어디쯤이다. 쓴 글이 공모전에서 탈락하더라도, 투고한 출판사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받지 못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마저 읽지 않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쓸 수 있는 뚝심은 내가 쓴 글을 스스로 좋아하면서도 만족하지 않는 평정심에서 온다. 어쩌면 좋은 글을 써내는 일은 아이를 키우는 일처럼 지난한 과업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니, 어느 틈에 다 커버린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흐뭇한 눈빛으로, 언젠가 내 글을 바라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