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폭스 갬빗』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윤하의 데뷔작이다. 2017년에 로커스상을 수상한 데 이어, 이 작품이 포함된 시리즈 「제국의 기계」 3부작으로 SF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에 3년 연속 최종 노미네이트 되는 기염을 토했다. 데뷔작으로 이룬 성과가 이 정도라면, 작가의 이후 행보를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이윤하는 어린 시절부터 밀리터리 SF와 스페이스 오페라를 즐겨 읽었다고 하는데, 유년기의 상당량을 한국에서 보낸 이 작가에게 서양 백인 남성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20세기 영미권 SF 문학의 흐름은 다분히 이질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나인폭스 갬빗』에서 주인공을 동아시아 여성으로 묘사한 것도 아마 그런 의문에서 싹튼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의 주인공 켈 체리스는 작가의 상상 속에서 분명 ―작가 본인을 모티프로 한― 한국계 여성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또 다른 중요인물인 '구미호 장군' 슈오스 제다오의 캐릭터도 이색적이다. 작가는 한국의 구미호 민담을 토대로 이 인물을 창조했다고 하는데, 사실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라는 캐릭터 디자인과 사람을 홀리는 교묘한 술수를 부린다는 설정 외에는 특별히 겹치는 것이 없다. 그마저도 여기선 꼬리가 아니라 눈이 아홉 개라는 설정으로 바뀌었고, 제다오가 체리스를 일방적으로 홀리는 것이 아니라 사령부의 승인 하에 체리스의 몸에 결박되는 형식으로 변주된다. 즉 제다오는 이 작품에서 구미호의 몸을 지니고 처음부터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갇혀있던 영혼의 형태로 존재하다가 체리스의 몸 안에 들어가면서 구미호의 그림자로서 구체화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한국어판을 출간한 허블 출판사는 '한국인최초 휴고상 최종 노미네이트'라는 표현을 홍보문구에 썼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작가는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고, 이 책 또한 한국어로 쓰인 작품이 아니며, 몇 가지 기본적 설정과 모티프를 제외하면 그리 한국적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허블도 욕심부린 것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작가의 한국 국적 소지 여부는 이 작품의 탁월함과 전혀 관계가 없다. 스토리텔링이 기대한 것보다 한국적이지 않다고 해서 재미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작품의 탄생 배경으로서 작가의 성장 환경을 들여다보고, 그중 어떤 요인이 작품 속 인물과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는 것 정도가 독자의 선택권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작품에는 '육두정'으로 묘사되는 제국주의 우주 정부가 등장한다. 육두정에는 슈오스, 켈, 안단, 비도나, 라할, 니라이의 여섯 개 분파가 존재하며, 이들 분파는 저마다 특기를 살려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구미호 장군 슈오스 제다오는 뛰어난 책략가로서 과거 여러 전장에서 활약하다가 지옥 나선 요새에서 돌연 아군을 학살하고는 처형되어 '검은 요람'에 400년 동안 갇혀있었다. 그러다 최근 이단 세력의 반란으로 육두정 중심부에 위치한 '산개하는 바늘 요새'가 함락될 위기에 처하면서, 사령부는 켈 체리스 대위의 몸에 슈오스 제다오의 영혼을 결박시켜 전장에 내보내기로 한다.
『나인폭스 갬빗』의 세계에서 우주전은 총과 포를 쏘는 방식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그보다 핵심적인 장치로서 작가는 '역법' 개념을 도입하는데, 알다시피 역법이란 시간을 계측하는 표준화된 도구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시간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 주기를 축으로 계량된다. 그렇다면 우주에선 어떨까. 단선적인 시간의 흐름 중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기본 단위로 삼을지에 따라 가능한 역법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나인폭스 갬빗』에서는 서로 다른 역법을 사용하면 물리법칙까지 달리 적용되는 우주를 가정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그러다 보니 전쟁도 단순히 총만 가지고는 일어날 수 없게 된다. 상대 진영의 물리법칙을 관장하는 역법을 부식시키거나 아니면 그 역법을 역이용하여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꼭 역법이나 수학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만 책의 재미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우주전쟁은 아직까지 판타지의 영역으로 남아있고, 기실 그래서 더 재미있는 법이니까. 우주전에 대한 독자들의 상상과 판타지로 채워나가야 할 부분을 억지로 하나하나 설명하려들지 않는 것이 이 책이 갖춘 미덕이다. 덕분에 독자는 작품 속 낯선 우주의 환경에서도 나름의 상상력을 보태어 흥미로운 전쟁 서사를 이어갈 수 있다. 아마 독자들의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진 『나인폭스 갬빗』의 전장과 함대의 이미지는 저마다 큰 차이가 날 것이다. 이 작품이 정말 훌륭한 것은 우주전에 동아시아의 색채를 가미하여 색다른 이미지를 선보이면서도, 기존 밀리터리 SF나 스페이스 오페라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도 자기만의 판타지를 구현할 기회를 충실하게 제공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