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란, 서랍이나 상자 같은 것이다. 비슷한 대상을 모아 분류하고 나중에 찾기 쉽게 정돈하는 도구다. 그렇다고 모든 장르가 한낱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할 마음은 없다. 때때로 장르는 그 안에서 주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를 외부인의 시각으로 성급히 재단하는 것은 명백한 결례다. 나는 여기에서 일부 장르의 디테일을 낱낱이 해부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장르'라고 통칭하는 대단히 모호한 개념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장르의 핵심은 어느 한 장르의 중심이 아니라 장르 사이 중첩되는 경계면에 있다. 장르의 경계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기준은 흐릿해진다. 예컨대 우리는 락과 발라드와 트로트의 경계를 명확히 그을 수 없다. 비교적 간단해 보이는 클래식과 재즈와 팝의 경계도 마찬가지다. 각 장르의 한가운데에서는 손바닥 주무르듯 쉬운 일도 경계로 가면 어려워진다. 이건 우리가 음악에 문외한이어서가 아니다. 뚜렷한 경계를 긋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고 무의미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다. 한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을 분석하여 전형적 요소들을 열거하더라도 그것이 곧 불변의 기준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본류에서 파생된 수많은 아류에는 언제나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모여 사용하는 재료와 규칙이 충분히 단단해지면 비로소 장르의 울타리가 느슨하게 둘러쳐지면서 특수한 성질을 띠는 공간이 생긴다. 그 안에서 재료와 규칙을 공유하며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장르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루이 암스트롱과 빌 에반스와 스티비 원더, 그리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음악인들이 그 모든 상이한 개성에도 불구하고 재즈 애호가 그룹의 플레이리스트에 함께 놓이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멋지지 않은가.
영화나 책은 어떨까. 당신은 어쩌면 SF와 호러를 장르적으로 칼같이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에일리언>(1979)을 둘 중 어느 한 장르로만 설명하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순문학과 장르문학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2016)은 순문학인가? 정유정의 『28』은? 이 질문에 '예'나 '아니요'로 명확히 답할 수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심지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소설과 수필의 구분을 픽션과 논픽션을 가르는 도구로 편리하게 사용하지만, 윤오영의―아마 40년 세월에 바래진 기억의 산물일― 「방망이 깎던 노인」(1974)이 지닌 고도의 문학성을 떠올리면 둘의 경계도 생각처럼 쉬이 그어지지 않는다. 요컨대 얼마만큼의 허구가 픽션을 ―안전하게― 담보하는가.
물론 장르의 경계가 불명확하다 해서 그 쓰임마저 무용해지는 것은 아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는 누가 뭐라 해도 SF고, <대부>(1972)는 누가 뭐라 하든 말든 필름 누아르 계보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의 『붉은 오른손』(1945)은 명백히 미스터리 장르소설이며, 해도연의 『위대한 침묵』(2018)은 하드 SF로 분류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즉 장르란 여전히 유용하고, 반드시 필요한 개념이다. 중요한 건 이 유용한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점이다.
글 쓰는 사람들의 흔한 고민 가운데 하나는 글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나는 과연 어떤 종류의 글을 쓸 것인가. 나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글은 어떤 글일까. 단편소설이 좋을까, 일상을 담은 에세이가 좋을까. 전문지식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기사나 칼럼이 좋을까, 정치적 주장을 담은 팸플릿이 좋을까.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버무린 르포르타주가 좋을까, 문학, 영화, 음악, 미술 등 온갖 예술작품에 대한 평론이 좋을까. 역시 정답은 없다. 가능하다면 전부 다 써보기를 권하고 싶다. 직접 써보지 않으면 내가 잘 쓰는지 못 쓰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글의 형식을 정했으면 내용을 담아낼 장르도 결정해야 한다. 내 글의 정체성이 곧 나와 같다는 견지에서, 나는 되도록 여러 장르를 탐색하려 애쓰는 편이다. 글로 나를 드러내면서 온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장르는 무엇일까. 구체적 실체는 없지만 머릿속으로 열심히 굴리고 있는 아이디어 정도는 있다. 정말 쓸 수 있을까. 확실한 건, 누구든 장기적으로 글을 쓸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장르 사이 흐릿한 경계면에서 자기 정체성을 탐색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