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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un 10. 2017

거짓말하는 아이

아이는 마음껏 실수하고, 인정하고, 반성해야 건강하게 성장한다

아이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품성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직을 꼽는다. 정직한 품성은 마음이 건강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 기준에서 볼 때, 다른 발달 상의 특징이나 요소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아이의 성장에 있어 건강이나 안전에 견줄 만큼 중요한 기준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직을 아이의 가장 중요한 품성으로 여기는 것은 소박하면서도 자연스럽다.



"모든 일에 정직해야지. 왜 정직하지 못하니? 결국 이렇게 다 알게 될 일인데 왜 거짓말을 해? 거짓말하면 모를 것 같아? 들키지만 않으면 잘못한 게 없던 일이 되니? 처음부터 인정하고 반성하면 될 일이었는데 네 거짓말 몇 마디로 얼마나 큰일이 되었는지 봐라. 왜 매번 간단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물론 거짓말은 잘못이다. 그러나 다른 것들에 비해 특별히 나쁜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어린 시절 아이들이 흔히 저지르는 수많은 다른 실수나 잘못들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반성하고 책임지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유독 아이의 거짓말에 큰 의미를 두고 걱정하면서 아이의 자존심을 필요 이상으로 무너뜨린다. 그것이 아이의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거짓말이나 변명을 하는데,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내가 자주 거짓말을 해서 믿음을 잃었다고 하겠지만 내 입장에선 반대다. 잘못하고 실수했을 때, 누군가가 내게도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 헤아려주고 내 속 이야기를 궁금해해주었다면 나는 거짓 뒤에 숨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당연한 아이가 되어 있었고, 어떤 말로도 내 주변 사람들의 실망을 되돌릴 수 없었다. 나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작은 믿음이라도 얻기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거짓말뿐이었고, 잘못된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다 보니 상황이 점점 악화되었을 뿐이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아이는 허용적인 분위기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자랐을 가능성이 높다. 어린 시절 실수나 잘못이 단호한 부정적 평가와 엄한 벌로 이어지는 경험을 주로 하며 자란 아이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또래보다 더 많이 갖게 되고, 처벌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성향도 더욱 강해진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보다 애초에 잘못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잘못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이는 이미 저지른 잘못을 정직하게 시인하는 대신 거짓으로 감추는 길을 택한다. 이런 경우 최초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거짓말을 할 때 표정과 몸짓에 어색함이 묻어나는데, 이는 아직 능숙하게 거짓말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툰 거짓말로 잘못을 감추려다 탄로 나는 과정을 수없이 겪은 아이들은 끝내 사람을 감쪽같이 속이는 방법을 터득한다. 거짓을 훈련하는 것이다. 학습은 반드시 바람직한 영역에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주위 사람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아이들은 자연스레 거짓에 노출되고, 그만큼 훈련된다. 자연히 자존감은 낮아지고, 스스로 신뢰받을 만한 사람이라 여기지 못하는 아이는 점점 더 거짓의 힘을 빌려 얇은 관계들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아이의 자존감이 충분히 높을 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때그때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 아이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직면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진실은 그 자체로 옳을 뿐만 아니라 거짓에 비해 효용 가치도 높다는 것을 긴 대화의 과정에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정직하지 못하면 결국 네 손해야.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게 되니까. 모두를 속여도 자신만은 속일 수 없는 법이거든. 거짓말하는 자기 모습에 점점 실망하고 스스로 초라하게 느끼게 되겠지. 그런 식으로는 절대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없어.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믿을 수 있겠니. 그러니까 거짓말하지 말라는 거야."


어른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다. 어른들만의 완결된 논리로 아이를 재단하고 가두는 것 말이다. 아이와 어른의 대화는 구조적으로 비대칭이다. 아이에 비해 어른의 논리가 훨씬 완결성이 높은 것은 그런 비대칭성을 충실히 반영한 결과일 뿐, 논리적 사고력이나 인지능력 같은 것과는 별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어른이 그들만의 빈틈없는 논리로 아이를 궁지에 빠지게 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그 내용이 아무리 윤리적으로 옳더라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그 내용의 윤리적 당위에는 어렴풋이 동의할지 몰라도, 어른의 일방적 소통방식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에겐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 내릴 권리가 있고, 어른은 대화하는 동안 그 권리를 지켜주어야 한다. 아무리 당연한 문제라 해도 그렇다. 아이가 스스로 고민하고 내린 결론과 일방적으로 주입받은 결론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커다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국 거짓말을 해버렸다. 창피하고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왜 어른들은 나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말하고 싶지 않은 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그건 또 다른 이유로 나의 문제점이 될 것이다. 성격이 어둡고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어른의 기준에 맞추어 정직해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어른의 논리와 기준 안에 갇혀있는 셈이다.'


논리적, 윤리적으로 옳은 말을 들려주는 것은 물론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는 언어로는 적절하지 못하다.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왜 잘못인지에 대한 설명을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계속해서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되는 이유, 노력하는데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습관, 이런 것들에 얽힌 사연에 대한 '공감'이다.


억울한 마음이 남아 있는 아이는 자기 잘못을 알아도 진심으로 반성하기 어렵다. 억울한 속사정을 다 털어놓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충분한 공감을 받은 후에, 그럼에도 잘못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만 진심어린 반성이 가능하다. 아이가 억울해하는 그 일이 사실 전혀 억울해할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모든 사정을 털어놓고 후련한 마음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정직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들려줄 말은 되도록 섬세하게 골라야 한다. 거칠고 자극적인 말이 아닌 부드럽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말을 들려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 깊이 생각한 아이가 자기 문제를 자기 언어로 차분히 설명하고 반성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말하고 지적하기'보다 '듣고 공감하기'가 아이의 정직성을 기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것을 우리는 정직이라 한다. 하지만 아이는 자라면서 필연적으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즉 성장이란 자기만의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는 결코 드러낼 수 없는 은밀한 영역이 생기고, 이를 포장하기 위해 거짓과 꾸밈의 기술이 등장한다. 이렇듯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에서 등장하는 거짓의 기술을 두고 부정직하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정직과 부정직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아이의 정직성에 대한 판단 기준도 점점 세우기 어려워진다. 수많은 아이들이 거짓말 잘하는 아이로 오해받고 있는 것은, 이토록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무작정 쉽고 단순하게 해치우려 들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잘못에 대한 허용범위가 넉넉할 때 아이는 마음껏 실수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그에 맞는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다. 즉 허용적 분위기는 자라는 아이들에게 필수적이다. 그것은 마냥 오냐오냐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아이 입장에서 언제나 믿을 만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에게는 언제나 기댈 수 있는 감정적 지지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정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보다 건강하고 정직하게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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