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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Aug 06. 2017

꿈이 없는 아이

쓸데없고 엉뚱해 보이는 행동들이 모여 진정 가치 있는 꿈을 만든다

꿈이란 간절히 이루고 싶은 어떤 것이다. 단지 꿈꾸는 단계를 벗어나 언젠가 반드시 현실로 불러오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우리는 꿈이라 부른다. 꿈을 가진 사람은 놀랄 만한 에너지로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한편 아이들에게 꿈이란, 어른이 되어서 갖게 될 직업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꿈을 물으면 보통은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과 관련된 직업의 이름을 말한다. 꿈을 말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언제나 진지하다. 그런데 만약 아이에게 꿈이 없다면 어떨까.



"어리다고 해서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살면 절대 안 돼.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데. 네 나이 친구들이 다 놀기만 할 것 같아도 실제론 안 그래.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벌써부터 꿈을 이루려고 피나게 노력하는 줄 아니? 그런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 되는 거야."


아이가 아직 꿈이 없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고 하면 어른들은 대개 실망한다. 세상을 앞서 경험한 어른들에게 인생이란, 일찍 시작할수록 유리한 승자독식 게임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릴 때 진로를 확실히 정하고 그 분야와 관련된 지식과 경험, 기능을 꾸준히 쌓아간다면 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뭘 하고 싶은지도, 무엇이 적성에 맞는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거창한 꿈을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꿈은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꿈이 없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꿈을 내 것인 양 꾸며내고 싶지도 않다. 서두르지 않아도 나는 언젠가 나의 꿈을 갖게 될 것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을 걸어갈 것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마음에도 없는 꿈을 억지로 지어내 사람들 앞에 펼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반드시 생길 나의 꿈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지지와 믿음이다.'


꿈은 반드시 생긴다. 조바심을 낸다고 해서 그 꿈을 앞당길 수는 없다. 대신 아이를 진정으로 믿고 지지하는 마음은 언젠가 찾아올 꿈을 더욱 건강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이것이 어른들이 할 일이다. 꿈을 가지라고 압박하거나 대신 찾아주려 서두르지 말고, 아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스스로 온전히 해낼 능력과 자신감을 길러주어야 한다.


꿈을 향한 아이의 자신감은 다른 사람이 끄집어낼 수 없다. 다만 꾸준한 대화를 통해 아이의 자신감을 구체화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때는 대화의 내용보다도 형식이 중요하다. 즉 아이가 어떤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이에 맞지 않는 수준 낮은 말을 하더라도, 이를 따라 끊임없이 감정적 지지와 정서적 공감을 보내야 한다. 이렇게 안전한 환경 속에서 대화로 자존감을 기른 아이들은, 미래에 어떤 꿈이 찾아와도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능력으로 구체화될 것이다.



한편 우리는 아이가 마음껏 꿈꿀 수 있는 상황에 있는지에도 꾸준히 관심 가져야 한다. 아이가 진정 가치 있는 꿈, 실현시킬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꿈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를 두고 우리가 정말 궁금해야 할 것은 '왜 아직도 꿈이 없을까'가 아니라, '과연 아이는 마음껏 꿈꿀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친구들 만나 쓸데없이 돌아다니면서 놀 시간에 책을 한 글자라도 더 봐라.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면서 그렇게 놀기만 하니. 무슨 자신감으로 그러는지 모르겠다. 너 벌써부터 그렇게 공부 뒤처지고 놀기만 하면 나중에 후회해도 늦는다. 다른 애들은 벌써 다 하고 싶은 것 찾아가지고 노력하는데 너는 대체 언제 정신 차릴래?"


꿈은 명확한 타깃을 가지고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어느 날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때때로 어른의 눈에 쓸데없어 보이는 행동들이 모여 아이의 꿈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어른들은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저 시간낭비 일축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시간낭비일 수 있지만 사실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시간낭비인지 아닌지 아이가 스스로 경험하고 판단하는 과정이다. 이는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며 만날 모든 일들에 일관적으로 적용될 원칙이다.


'어린 시기에 쓸데없는 경험, 엉뚱한 행동 좀 더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뭘까. 나는 그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이 즐거움이 훗날 내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나에겐 문제 될 것 없다. 사실 지금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이 나에겐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 자신에게는 이토록 중요한 일이지만, 어른들은 그들의 경험을 근거로 시간낭비 말라고 한다.'


미래의 수준 높은 행복을 위해 현재의 쾌락을 얼마간 유예하고 인내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일방적 강압과 훈계에 의해 주입된다면 의미가 없다. 결국 아이가 생활 속 경험을 통해 스스로 습득하도록 믿고 기다려야 한다.


믿고 기다리는 과정 속에는, 아이가 쓸데없고 엉뚱해 보이는 일을 벌이는 것까지 오롯이 포함되어야 한다. 어쩌면 진정 가치 있는 꿈은 쓸데없고 엉뚱해 보이는 경험들이 수없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가 꿈을 말할 때, 그 꿈이 다소 실망스럽거나 걱정되더라도 끝까지 믿고 지지하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아이의 꿈에 대해 어른이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이며, 아이가 마음껏 꿈꾸며 자라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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