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450매 분량의 장편 판타지입니다. 지금도 연재 중이고, 아마 앞으로도 길게 이어질 것 같습니다. 그만큼 긴 호흡으로 장대한 세계관을 구축해나가는 작품입니다. 이야기가 구조적으로 넓게 열려 있어서 어느 방향으로든 스케일 있는 전개가 가능해 보입니다. 리뷰를 쓰는 시점에 저는 15회까지 읽었는데 아직까지 도입부의 중요한 플롯이 일단락되지 않았고, ‘기원의 힘’을 지닌 ‘에이드나’의 능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현되는지 드러나지 않았어요. 속도감은 떨어지는 대신 묵직한 한 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풍겨오는 서스펜스가 있습니다.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만큼 강한 임팩트로 기대를 충족시켜줄지는 더 지켜봐야겠죠.
‘진’과 ‘제냐’는 쌍둥이 남매입니다. 아버지 ‘일케 자작’은 본인과 가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냉혹한 인물이고요. 부성애의 결핍 속에서 자란 쌍둥이가 서로를 의지하며 성장해가는 설정은, 가문의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역학 관계와 주인공이 지닌 특별한 능력 같은 장치들에 거듭 포개어지면서, 중세 유럽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판타지의 장르적 색채를 획득합니다. 이 익숙한 조합의 성공 여부는 주인공의 능력으로 얼마나 강렬한 스펙터클을 연출해내느냐에 달려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도입부가 공들여 쌓아 올리고 있는 서사는 사실상 주인공의 능력을 폭발적으로 묘사하기 전의 응축 단계일 겁니다.
문장이 전반적으로 섬세하고 유려해서 읽는 내내 머릿속에 그림 같은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특히 ‘나보코브’ 영지와 '일케 저택'의 겨울 풍경을 묘사하는 문장, 좁은 공간에 감도는 긴장감과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문장이 기억에 남네요. 이야기가 구축하는 중세 판타지 세계관에 잘 어울립니다. 낭만적 풍경에 대비되는 치밀한 내면 묘사, 간간이 선보이는 위트와 유머는 앞으로 작가 특유의 문체로 자리 잡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한 마디로 읽는 재미가 있어요. 매회 서사 전개가 좀 더딘 듯해도 재미있게 읽히는 건 아마 문장이 가진 매력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