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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Oct 03. 2021

하나의 집이 완성되는 여정

윤가은, <우리집>, 2019

* 스포일러 : 중간



집.


나에게 집은 휴식이라는 단어에 가장 가깝게 닿는다. 집은 내가 아침에 나서는 곳이자 저녁에 돌아갈 곳이다. 그런 점에서 집은 가족이나 삶의 동의어이기도 하다. 사람은 집 없이 살아갈 수 없다.


한편 집은 특정 시간이나 공간일 때도 있고 중요한 자산이나 투자의 대상으로 파악되기도 한다. 누군가 기쁜 얼굴로 '집을 장만했다'고 말하거나 자조적인 투로 '아직까지 집도 없다'고 말할 때, 집은 이러저러한 틀에 맞추어 규격화된 객체로 간주된다. 현실에서 집은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한 매우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이다.


또한 집은 작고 약한 것들이 안락하게 보호받는 곳이다. 그렇지 않은 집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나는 집이라면 마땅히 그 안에 속한 작은 생명들을 매일 건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집은 거친 현실 속에서 결국 위로를 안겨주는 무엇이다.


영화 <우리집>에서 말하는 집은 이 모든 요소의 느슨한 총합이다. 집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의 경험과 감각으로 채워질 때 비로소 제 본연의 색깔을 갖는다. 그 경험 안에는 나와 가족, 이상과 현실, 위로와 마찰이 혼재한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 빠진 집은 더는 우리집이 아니게 될 것이다.



윤가은 감독의 전작 <우리들>(2015) 이야기를 먼저 하자. 이 영화의 시작은 '이선(최수인)'이다. 영화는 90분 남짓한 러닝 타임에서 1분이 넘는 시간을 할애하여 선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한다. 장소는 초등학교 운동장. 친구들은 곧 시작될 피구 시합에서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편을 짜려 애쓰고 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쪽이 한 명씩 뽑아가는 익숙한 말소리가 앵글 밖에서 들려온다. 관객은 마지막까지 선택받지 못하는 선의 얼굴을 지켜본다. 친구들의 해맑고 선명한 악의가 선의 얼굴에 그늘로 드리워지는 동안 카메라는 소리 없이 말한다. 우리는 너를 끝까지 응원할 거라고.


이 선언과도 같은 오프닝 시퀀스는 <우리집>(2019)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이 영화의 시작은 '하나(김나연)'다. 노골적인 악의가 날 선 말들에 실려 부부 사이를 오가는 내내 카메라는 하나의 얼굴을 비춘다.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하나가 엄마 아빠 사이에서 허둥대는 모습이 못내 안쓰럽다.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이자, 하나를 지켜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하나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하나는 집안에 흐르는 불안한 위화감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다. 엄마와 아빠의 관계는 한참 전에 수명을 다한 듯 보인다. 그것이 하나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가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다. 하나는 냉랭한 분위기를 풀어보기 위해 가족 여행을 떠나자고 설득해보지만 가족들은 그저 시큰둥하기만 하다.


어느 날 하나는 '유미(김시아)', '유진(주예림)' 자매를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다. 유미와 유진도 집에 대한 고민이 있다. 둘은 잦은 이사 때문에 유년의 추억을 낯선 상실감으로 채워왔다. 또 한 번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유미는 하나에게 힘없이 말한다.


"우리 집은 진짜 왜 이럴까."


도대체 왜 이런 건지 알 수 없기는 하나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집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게 된 하나와 유미, 유진 자매는 한 층 더 가까운 사이가 되어 세 사람만의 추억을 쌓아나간다. 셋은 어른의 발길이 뜸한 유미와 유진의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이들이 친구로서, 언니와 동생으로서 머무는 공간은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축조된다. 적어도 이들의 집은 외롭거나 불행하지 않다. 세상 모든 집이 이런 풍경이라면 어떨까.


[출처] 영화 <우리집> 스틸컷


하지만 세 사람의 동화 같은 집은 단단한 현실의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유미네 집은 이사를 앞두고 부동산에 내놓아진 상태고, 하나도 저녁마다 싸우는 엄마 아빠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결국 행복한 우리 집이란, 달콤한 한낮의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어린 주인공들이 각자의 집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걸까.


하나와 유미, 유진은 함께 상자를 쌓고 계란판을 씌워 모형 집을 만든다. 그건 그 자체로 하나의 즐거운 추억이면서, 세 사람이 가진 행복한 집의 이미지를 가시적으로 표현한 상징물이기도 하다. 영화의 후반부에 셋은 알록달록하게 조화로운 모형 집을 가지고 먼 길을 나선다. 전화를 받지 않는 유미와 유진의 부모님에게 집이 곧 팔려 급하게 이사를 가야 할 수도 있다고 알리는 것이 목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하나가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가족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출처] 영화 <우리집> 스틸컷


짐작한 대로 여정은 고되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끝까지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각자 '우리 집'을 지켜내기 위해 세 인물이 보여주는 연대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의도했던 목적지는 아니더라도, 이번 여정을 통해 무언가 중요한 변화가 그들 삶에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때로 값진 배움은 의도와 관계없는 영역에서 일어난다고 했으니까.


아니면 모든 것이 그대로일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집이 안고 있는 현실의 문제는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뒤집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현실이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처음 하나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에 다짐한 선언은 변함없이 유효하다. 결과가 어떻든 우리는 끝까지 너를 응원할 거니까. 그러니 지금처럼 앞에 놓인 길을 힘 있게 걸어 나갈 수 있기를. 그렇게 또 하나의 집이 단단하게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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