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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Dec 07. 2021

흔들리는 사사, 가려진 세계의 서막

42. 서계수 - 「종막의 사사」(92매)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닌 사람에게 성서가 경전이라면, 신앙이 없는 저와 같은 사람에게 성서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책입니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때로 신화적이고 때로 인간적인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지요. 생각해보면 전 성서를 경건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마 그래서 더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겠죠. 그런 저에게 「종막의 사사」는 굉장히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스핀오프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독자는 구약 성서의 사사기에 등장하는 몇몇 사사들의 다분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게 됩니다. 엘리와 삼손, 사무엘은 유일신 엘로힘에게 사사로 부름 받은 특별한 자들이면서, 동시에 불완전한 인간의 심신을 벗어날 수 없었던 존재이기도 합니다. 슬픔과 두려움, 불안과 좌절은 때마다 찾아와 이들의 내면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흡인력은 바로 그 흔들림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결국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들은 모두 얼마간 흔들리기 마련이지요.


이야기에 쓰인 핵심 모티브는 모두 주인공 사무엘이 여성이라는 설정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어머니 한나는 아기를 갖기를, 정확히는 아들을 낳기를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그런 한나의 입장에서 볼 때 딸로 태어난 사무엘은 제 기도에 대한 절반의 응답인 셈이죠. 젖을 막 뗀 후부터 주님의 집에 바쳐진 사무엘은 일 년에 한 번씩 한나를 만나지만, 모녀의 만남과 둘 사이 오가는 감정에선 왠지 모를 이물감이 느껴집니다. 사무엘은 당연하게도 어머니의 딸로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싶을 테지만, 한나의 사랑에는 언제나 이러저러한 타산이 섞여 있습니다. 사무엘은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 만으로 이미 제 어미의 기대를 한 번 저버린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의 태생적 한계를 넘어 일종의 원죄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사무엘은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일 년 만에 만난 어미에게 당신이 얼마나 아들을 소망해왔는지 따위의 얘기를 들어야 하지요.


이것은 물론 한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한나가 그토록 강박적으로 아들을 원하는 이유는 그를 둘러싼 세계가 여성으로 하여금 아들을 내어 놓으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한나가 남편 엘가나의 또 다른 아내 브닌나와 소모적인 자식 경쟁을 벌여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지요. 남성 위주로 기술된 역사의 막후에서 여성이 치러야 했을 갈등과 고통이 얼마나 치열하고 또한 소모적이었을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 소설과 리뷰 전문은 아래 링크를 이용해주세요.



소설 - 「종막의 사사」

리뷰 - 「흔들리는 사사, 가려진 세계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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