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낙원의 『금성 탐험대』는 1962년 12월부터 1964년 9월까지 청소년 잡지 《학원》에 연재되었던 과학소설이다. 이야기는 냉전 체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미소 양국의 살벌한 우주 개발 경쟁에서 눈에 띄게 활약하는 인물을 젊은 한국인들로 설정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그건 당시 청소년 독자를 겨냥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선 거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나, 그럼에도 오늘의 SF가 한국인 캐릭터를 활용하는 방식과 반 세기 전의 그것을 저울질해보는 것은 여전히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다.
곳곳에 과학적 호기심과 탐구에 대한 열정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독자가 우주선 내부의 구조나 무중력 환경의 디테일에 일정한 기대를 품고 작품을 읽게 되지만, 『금성 탐험대』가 발표된 시기의 청소년 독자가 같은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읽었으리라 보긴 어렵다. 그런 독자에게 이 이야기는 신선한 자극이자 오락이었을 것이다. 주인공이 낯선 행성에 도착하여 마주치게 되는 화산, 바다, 밀림, 사막과 같은 다양한 지형, 선내 무중력 체험, 초고도 기술 문명이 반영된 금성의 지하 도시, 외계인과의 조우와 소통, 로봇과 괴생물체, 심지어 공룡과 이무기의 등장까지, 이야기는 볼거리로 가득하다.
이야기는 미국과 소련이 각각 발사한 두 우주선의 플롯이 교차 서술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미국 우주선 'V.P.호'에는 조종사 '윌리엄 중령', 부조종사 '박철 후보생', 통신원 '최미옥', '애덤스 박사', '모리스 교수'가 타고, 소련 우주선 'C.C.C.P.호'에는 조종사 '니콜라이 중령', 부조종사 '고진 후보생', 통신원 '나타샤', '세바스키 박사', '치올코프 교수'가 탄다. 양국의 금성 탐험대는 팀원의 성비, 역할, 지위부터 우주선의 규모와 구조까지 자로 잰 듯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이것은 당시 진영 간 힘의 균형을 고려한 설정임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느껴지는데, 한편으로 인물 간 대립 구도를 단순하게 도식화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점 또한 분명하다. 『금성 탐험대』의 모험 서사가 물 흐르듯 막힘없이 흘러갈 수 있는 것은 단순한 형식에서 오는 안정감 때문이기도 하다.
예상대로 두 우주선은 초반에 유치한 추격전을 벌이다 우여곡절 끝에 금성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금성인이 아닌 외계인을 만난다. 외계인의 정체는 켄타우로스 성좌의 알파성인이다. 이들은 지난 세기에 크게 유행했던 전형적인 외계인의 이미지로 묘사된다.이밖에도 『금성 탐험대』에는 흘러간 세월을 추억하게 만드는 설정이 몇 가지 보이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여성 인물의 역할이다. 여성인 최미옥과 나타샤는 둘 다 통신원이고, 비행에서 통신의 중요성이야 굳이 말로 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어쩐지 여기서는 ―대부분 여성이었던― 5-60년대 전화교환원의 뉘앙스가 짙게 묻어난다.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미옥은 분명 드물게 비중 있게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지만, 그럼에도 결국 남성 파일럿인 고진의 카운터파트로 여겨진다. 여기에 통신원이라는 역할이 한몫했을 것이라 짐작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아닐 것이다. 이 작품에 드러난 우주왕복선의 기능은 짐작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아날로그적이니까.
물론 이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금성 탐험대』는 시대를 많이 앞서간 소설이다. 당시에 굉장히 참신하면서도 실험적이었을 발상들을 줄줄이 시도했을 뿐 아니라, 인류가 닿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합리적이고 겸허한 태도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후한 평가를 받을 만하다. 또한 당대의 시의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공상을 펼쳐보임으로써 역설적으로 더 큰 시의를 갖게 된 선구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예컨대 이 작품이 두 개의 우주선으로 표상되는 냉전 체제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었다면, 과연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 작품이 처음 잡지에 연재되던 시기로부터 6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이야기 안에 구축된 오래된 미래를 이미 지나왔다. 이야기의 배경에 묘사된 것들은 대부분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오래된 미래는 오지 않은 미래가 되었고, 이제 오지 않을 미래가 되어 가는 중이다. 좋은 일이다. 『금성 탐험대』가 오늘의 현실에 맞추어 다시 쓰인다면 많은 내용이 달라져야 할 테니. 생각해보라. 주인공 일행이 금성에 가서 하는 일은 생태계 파괴나 동물 학살과도 닮은 점이 많은데, 인간이 발 딛는 곳마다 무참히 짓밟힌 자연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반성해야 할 오늘날에 이런 소재를 하이틴 드라마처럼 해맑게 연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러니 한편으론 이런 이야기가 더 자주 읽히기를 바라게 된다. 과거 작품 속에 묘사된 미래가 실제로 겪으며 지나온 풍경과 다를 때 일정하게 느껴지는 이질감은, 우리의 사고를 이전에 생각해보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미래는 그렇게 무수한 갈래의 사고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