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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ul 17. 2022

남겨진 소녀의 모험기

루스 소여, 『롤러스케이트 타는 소녀』, 아이세움, 2005

* 쪽수: 308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1936년에 발표되어 이듬해에 뉴베리 메달을 수상한 루스 소여Ruth Sawyer의 대표작 『롤러스케이트 타는 소녀Roller Skates』입니다. 루스 소여는 부유하고 엄격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10살이 되던 해에 부모가 그를 유모에게 맡긴 채 여름 내내 유럽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고 하지요. 이 작품은 바로 그 시절의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주인공 루신다는 10살 소녀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루신다의 부모가 루신다를 남겨두고 이탈리아로 떠나면서 시작됩니다. 떠나는 이유는 루신다의 어머니가 아프기 때문이고요. 물론 루신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기본적으로 '남겨진 소녀의 이야기'인 거예요. 전후 사정이 어찌 됐든 루신다는 어머니의 건강 회복에 도움이 안 되는 딸로 간주되고 있고요. 관점에 따라서는 일정 기간 동안 버림받았다고 볼 수도 있겠죠. 루신다 역시 사람들에게 자기가 고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린 주인공이 가족과 떨어져 홀로 남겨졌다고 하면 흔히 초반의 힘겨움을 점차 극복해나가는 전개를 상상하게 될 텐데, 뜻밖에도 이야기는 처음부터 밝고 활기찬 톤으로 흘러갑니다. 루신다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학교에 갑니다. 그리고 나이와 계층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즐겁고 씩씩하게 지내지요. 독자는 1890년대 당시 뉴욕의 10살 소녀에게 허락된 생활 반경 안에서 가능한 가장 역동적인 모험기를 보게 됩니다.


루신다는 피터즈와 네티 자매의 집에 맡겨졌는데, 그중 피터즈는 루신다가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자매는 마음을 다해 루신다를 보살피며 믿을 만한 보호자가 되어 주지요. 가족과 이별한 루신다가 외로움을 달래려 사방팔방을 헤집고 다녀도 크게 불안하지 않은 이유는 피터즈 자매가 언제나 뒤에서 루신다를 안정적으로 지지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이 이야기에는 좋은 어른이 많이 등장하지요. 좁은 배경 안에서 이토록 아름답고 서정적인 모험기가 펼쳐질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루신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물론 운이 좋아서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루신다는 세상과 이웃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는 좋은 사람이고, 알다시피 그런 사람 곁에는 비슷하게 좋은 사람들이 모이게 마련이지요. 루신다가 홀로 남겨진 상황에서도 행복한 추억만들어갈 수 있는 건 그가 자신과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어린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루신다의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어린이가 오롯이 이해하고 감당하기 버거운 아픔도 나와요. 루신다의 두 친구가 죽는데, 심지어 둘 중 한 명은 살인 사건의 희생자이고 아마도 루신다가 최초 목격자일 것으로 추정되지요. 또 다른 친구는 루신다의 갖은 노력에도 결국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슬픔과 충격은 루신다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작품의 제목으로도 쓰인 롤러스케이트는 루신다의 자유분방한 캐릭터를 상징하는 소품입니다. 루신다가 내뿜는 밝은 에너지를 함축한다고 볼 수도 있고요. 롤러스케이트를 발에 맞추어 길들이려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처럼, 루신다도 마냥 고분고분하고 얌전한 아이는 아니어서 속마음까지 가닿으려면 그만한 공을 들여야 하지요. 무슨 일에든 좀처럼 겁을 내지 않는 루신다와 어디든 거침없이 굴러가는 롤러스케이트는 참 잘 어울리는 조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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