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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ul 24. 2022

오래된 테마파크의 캐릭터 쇼

로알드 달, 『찰리와 초콜릿 공장』, 시공주니어, 2000

* 쪽수: 260



로알드 달Roald Dahl의 1964년 작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은 한국에서는 2005년에 개봉한 팀 버튼 감독의 영화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아요. 영화에 대해선 평이 갈리긴 하지만 저는 감독과 주연배우의 조합이 원작의 색깔과 잘 맞았다고 봅니다. 원작에는 없었던 윌리 웡카의 과거 에피소드도 시대적으로 유의미했고요. 내년에는 윌리 웡카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프리퀄 <웡카Wonka>가 개봉 예정인데, 티모시 샬라메가 주연을 맡았네요.


그런데 원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는 『찰리와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Charlie and The Great Glass Elevator』라는 후속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지요. 찰리가 주인공인 시리즈는 사실 그렇게까지 궁금한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독자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인물은 찰리 버켓이 아니라 윌리 웡카입니다. 그밖에 다른 인물들은 다 뻔하고 매력도 없어요.


이 이야기가 웡카의 캐릭터 쇼라는 사실은 작품이 지닌 몇 가지 미흡함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예컨대 여기 등장하는 어린이 캐릭터는 모두 지나치게 도구적이에요. 동화가 어린이를 이렇게 납작하게 묘사하는 경우도 드물 겁니다. 다섯 명 중 찰리를 제외한 네 명은 그냥 나쁜 아이들이죠. 이 친구들은 찰리의 선량함을 부각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에 부응하듯 찰리는 정말 지루할 정도로 착하기만 하고요.


그런 찰리가 단 한 번 찰리답지 않은 행동을 합니다. 길에서 주운 50펜스짜리 은화로 초콜릿을 산 것이죠.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비밀스러운 초콜릿 공장의 주인 윌리 웡카는 다섯 개의 초콜릿에 숨겨둔 골든 티켓을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공장 견학을 시켜주겠다고 발표합니다. 뿐만 아니라 평생 먹을 사탕과 초콜릿을 선물로 준다고 하지요. 가난한 찰리는 길에서 주운 돈으로 초콜릿을 사고, 기적처럼 골든 티켓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기존의 동화적 관성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전개는 조금 이상하죠. 어쨌든 주인공이 남의 돈으로 행운을  거잖아요.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예를 들어 찰리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아서 초콜릿을 사게 해도 이야기는 충분히 매끄럽게 이어지거든요.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지요. 그 이유는 찰리의 양심이 주로 가족 내에서만 작동하는, 매우 수동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찰리가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친절을 베푸는 일은 이야기를 통틀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아요. 심지어 함께 견학 온 다른 친구들이 심각한 곤경에 빠질 때조차 찰리는 가만히 서서 보기만 합니다. 그러니까 길에 떨어진 돈을 발견했을 때 적극적으로 주인을 찾아 나서지 않은 것도 실은 너무나 찰리다운 행동인 것이죠. 찰리는 독자가 동화 속 '착한 어린이 주인공'에게 기대하는 전형적 이미지에서 한 발 어긋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찰리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지요.


찰리와 함께 견학을 간 네 명의 어린이들은 모두 차례대로 벌을 받습니다. 아우구스투스 굴룹은 초콜릿 강물에 빠지고, 바이올렛 뷰리가드는 몸 전체가 블루베리처럼 파랗게 부풀어 오르고, 버루카 솔트는 다람쥐들에게 끌려가 쓰레기 소각장에 버려지고, 마이크 티비는 키가 2.5cm 정도로 줄어듭니다. 이중 일부는 영구적인 손상을 입게 되고요. 나쁜 어린이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는 믿음이 통용되던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임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가혹하지요. 실제로 이 지점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유효한 지적도 있어왔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윌리 웡카의 원맨 캐릭터 쇼예요. 다시 말해 윌리 웡카의 기이함, 기괴함이 곧 이 작품의 장르이자 정체성입니다. (그런 점에서 2023년 개봉을 앞둔 <웡카>는 이 시리즈의 정체성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말썽 부린 아이들을 그때그때 공장 밖으로 쫓아내는 상식적 조치가 이루어졌다면 웡카의 장르적 매력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당연히 작품 전체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겠지요. 찰리가 착하기만 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도 이 구도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찰리가 정의로워지면 웡카와의 충돌이 불가피해지고, 그러면 이야기는 훨씬 더 복잡해지거든요.


착한 어린이, 나쁜 어린이에 대한 스테레오타입도 마찬가지예요. 어린이의 욕망을 보다 깊이, 다각도로 분석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최근의 흐름에서 돌이켜봤을 때는 아쉬운 지점이 여럿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요. 하지만 꼭 시대적인 맥락이 아니더라도 이야기가 추구하는 재미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고려하면 이런 진부한 설정도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어린이 독자에게 모두 찰리처럼 착해지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거든요. 찰리의 역할은 독자의 롤모델이 아니라, 웡카의 응징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채로 독자를 안내하는 테마파크 가이드입니다. 초콜릿 공장에서 일어나는 강도 높은 처벌이나 응징이 그리 끔찍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 역시 독자가 찰리를 통해 사건들을 관찰하면서, 이것이 현실과 별도로 구축된 판타지 안에서 안전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확신을 자연스레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지점에서 로알드 달은 독보적인 역량을 지닌 작가였지요.


이렇듯 작품이 선악을 가르는 일률적인 방식, 어린이를 바라보는 일차원적인 시각 등은 물론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판타지의 장르 관습 안에서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합니다. 반면 윌리 웡카의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고 보아도 좀처럼 용인하기 어려운 특징도 이 작품은 가지고 있지요. 바로 움파룸파 사람들에 대한 태도입니다. 움파룸파 사람들은 산업 스파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웡카가 공장 문을 닫고 직접 밀림 지역의 룸파랜드에 가서 고용해온 일꾼들입니다. 이들은 초콜릿 공장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일하기 때문에 제조 비법을 유출할 우려 없습니다. 다만 이들을 묘사하는 작의 태도에는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지요. 움파룸파 족이 처음 등장할 때 웡카가 이들을 소개하는 말을 보세요.


"They were living on green caterpillars, and the caterpillars tasted revolting,(움파룸파 사람들은 초록색 쐐기벌레를 먹고살았어요. 하지만 그 쐐기라는 게 맛이 여간 역한 게 아닙니다.)"
"You had only to mention the word 'cacao' to an Oompa-Loompa and he would start dribbling at the mouth.(움파룸파 사람들은 '카카오'라는 말만 꺼내도 침을 질질 흘립니다.)"
"I said, look here, if you and all your people will come back to my country and live in my factory, you can have all the cacao beans you want!(제가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만약 당신과 당신 부족이 내가 사는 나라로 와서 우리 공장에서 살겠다면 당신이 원하는 만큼 카카오 열매를 드리지요!)"
"So I shipped them all over here, every man, woman, and child in the Oompa-Loompa tribe. It was easy. I smuggled them over in large packing cases with holes in them, and they all got here safely. They are wonderful workers.(그래서 전 어른, 아이,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움파룸파 사람들 모두를 배로 실어 왔습니다. 어렵지는 않았어요. 커다란 화물상자에 구멍을 뚫고 움파룸파 사람들을 그 속에 넣어 오면 되었으니까요. 얼마나 훌륭한 일꾼들인지 모릅니다.)"


웡카는 질 나쁜 자본가가 노동자를 하대하는 것 이상으로 움파룸파 사람들을 깔아보고 있습니다. 웡카의 밝고 장난기 어린 어조 속에서 움파룸파 사람들 고유의 생활 방식이나 문화는 그저 미개한 것으로 간단히 치부되지요. 이 관점에 따르면 웡카가 그들을 데려와 공장에서 살게 해 준 것은 일종의 축복입니다. 그토록 원하던 카카오 열매를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같은 맥락에서 웡카가 움파룸파 사람들을 상자로 실어 나른 행위 또한 탁월한 사업가의 남다른 발상 정도로 무난하게 승인되지요. 물론 지금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 없습니다. 21세기의 독자는 20세기의 한 영국 작가가 제국주의에 품고 있었던 미련과 향수를 읽게 됩니다. 더불어 그가 노예무역과 노동 착취를 연상케 하는 레퍼런스를 활용함에 있어서도 얼마나 가벼운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엿볼 수 있지요.


일면 무리해 보이는 이런 설정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작품의 배경으로 다시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찰리의 현실, 그리고 초콜릿 공장의 판타지로 처음부터 가파르게 분화됩니다. 둘 사이에는 현실적으로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지요. 가난에 묶여 있는 찰리의 현실은 초콜릿 공장 안에선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아요. 다시 말해 웡카의 초콜릿 공장은 현실의 문제가 모두 소거된 이상적인 공간, 유토피아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로알드 달은 노동과 관련된 이슈는 자신이 창조한 유토피아에 어울리지 않는 소음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이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문명화되지 않은 부족 사람들을 상상한 것을 보면요. 작가가 보기에 이들은 사람이라기보다 하나의 물건, 기계의 부속품에 가까웠던 것이죠. 카카오 열매와 같이 맞춤한 연료만 넣어주면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철저하게 몰개성적인 움파룸파 사람들은 노동 이슈에 대한 작가의 로망이 한껏 반영된 존재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팀 버튼의 영화를 통해 한층 더 견고해지지요.


결과적으로 이전에 많은 독자를 즐겁게 해 주었던 테마파크라고 해도 이제는 어느 정도 낡은 포맷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웡카의 캐릭터 쇼는 여전히 기발하고 흥미로운 구석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야기의 매력을 계속 유지하긴 어렵겠죠. 특히 제국주의의 그늘진 역사를 오락용 소모품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성립한다면 그 오락을 맘 편히 즐기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이처럼 오래된 작품에 은연중 드러나는 차별적 시각은 이야기 자체를 시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오늘날 수없이 만들어지는 이야기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같은 길을 가겠죠. 제겐 이것이 우리가 언제나 지금 속해 있는 세계의 윤리보다 더 나은 윤리를 상상해야 하는 이유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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