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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Aug 17. 2022

최신 한국영화 네 편 리뷰

올여름 빅 4라 불리는 한국영화 네 편에 대한 짧은 감상입니다. 약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배치는 개봉 날짜순입니다.



1. 최동훈, <외계+인 1부>, 2022

1391년 고려 말기와 2022년 현재를 넘나드는 SF 액션물이다. 최동훈은 이와 유사한 설정의 <전우치>이미 준수한 성적을 거둔 바 있다. <외계+인>은 여기에 쌍방의 시간여행 장치바디 스내처 모티프, 고풍스러움과 세련됨이 적절히 조합된 액션, 그리고 자신의 전작들에서 적극적으로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 케이퍼 무비의 클리셰를 더해 훨씬 화려하고 규모 있는 SF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흥행 성적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관객이 최동훈이란 이름에 거는 기대에 아주 착실하게 부응하지만 그뿐이다. 그의 전작들에 비추어 이번 작품에서 새롭게 두드러지는 설정은 단연 SF 장르에서 왔는데, 마블 프랜차이즈 영화들에 익숙한 관객 입장에선 별로 새로울 것이 없고, 그마저도 감독의 색깔에 묻혀 뚜렷한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와 소품을 활용한 짤막한 개그나 특유의 말맛나는 대사도 이번엔 잘 먹히지 않는다. 묵직한 배우가 여럿 등장하지만 염정아, 조우진 콤비를 제외하면 모두 기존의 콘셉트를 재사용한 캐릭터나 얼마간 초점이 맞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1부 결말의 휴머니즘 시퀀스는 통째로 들어내도 아지 않을 만큼 진부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거의 똑같고 할 한, 다른 영화들에서 이미 숱하게 보아 온 이어 액션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여준다. 착하고 성실하지만 결정적으로 지루한 오락물이 2부에서 반전을 이룰 수 있을까.


2. 김한민, <한산: 용의 출현>, 2022

1592년 여름,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도 대첩을 담았다. 전작 <명량>이 1597년 여름의 전투를 담고 있기 때문에, 5년 앞선 과거를 그린 후속작이 되었다. 전투에 이르기 직전까지 서스펜스를 끌어올리는 전반부와 전장의 스펙터클에 주력하는 후반부로 나뉘는 전개는 전작의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캐스팅으로부터 비롯하는 톤의 변화가 적지 않고, 한 인물에게 집중되었던 무게중심을 주변 인물들에게 분산시키려 시도 먹혀 영화의 인상은 전체적으로 아주 달라 보인다. 최민식-박해일을 포함해서 5년 간격을 두고 달라진 인물을 연기한 두 배우를 매칭해보는 재미 있는데, 그중 일부는 영화적으로 말이 안 된다.


드라마의 강도 측면에서 보자면 <한산>은 <명량>보다 신경 쓸 구석이 더 많은 영화다. <명량>은 객관적인 전력의 차이만 언급해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한 싸움이라는 사실이 산술적으로 드러나지만, <한산>은 이것이 얼마나 고된 싸움인지 조금 더 구체적인 드라마로 입증해야 한다. 영화는 이 틈새를 정치적 갈등으로 메운다. 물론 이순신은 여전히 과묵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한 층 강하게 각된다. 이밖에도 영화는 전작을 통해 끌어올려진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적을 꾀어내는 전술기동, 학익진과 어린진의 대결, 구선의 '충파'에서 오는 타격감과 같은 흥미로운 요소를 시청각적으로 완성도 높게 연출해내고 있다.


3. 한재림, <비상선언>, 2022

두세 개의 훌륭한 장면과 수십 개의 조악한 장면들로 이루어진 항공 재난 영화다. 장면마다 불편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한 마디로 요약하면 "굳이 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 찬 임시완은 굳이 왜 스스로를 좁은 기내에 가두었을까. 티 안 나게 대량살상이 가능한 생화학 무기를 굳이 왜 손바닥만 한 기내 화장실에만 살포하기로 마음먹었을까. 그렇게 질문을 이어가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그냥 체념하게 된다. 정확히는 자신이 140분짜리 값싼 롤러코스터에 올라탔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이 안에서 인간은 언제나 집체 단위로 사고한다. 개인으로서 자기 생각과 신념을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은 이 안에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죄다 감독의 꼭두각시이거나 일어나지도 않은 전쟁에 동원된 싸이보그들이다. 인간의 생명과 윤리는 감독의 필요에 따라 제멋대로 호출된다. 테러리즘을 다루는 영화에서 인간의 무게를 이렇게 가볍고 파리한 무엇으로 환원하는 경우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어느 모로 보나 근본적인 문제를 지닌 작품이지만, 정말로 나쁜 게 하나 더 있다. 전도연을 이렇게 피상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정말이지 배우에게도, 극 중 인물에게도, 관객에게도 예의가 아니다.


4. 이정재, <헌트>, 2022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으로 화제를 불러 모은 첩보 스릴러.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두 차장인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를 축으로 벌어지는 갈등이 영화의 중심 서사를 이룬다. 가려져 있던 의혹이 해소되며 하나의 플롯이 마무리되는 듯싶을 때 곧장 다음 의혹이 틈입하며 두 세력 간 긴장감을 팽팽히 끌어올린다. 연출은 시종 치밀하고 노련하며 기계적으로 철저하다. 러닝타임을 초단위로 쪼개어 의도한 장면을 가득가득 채워 넣은 느낌이 들만큼.


두 인물 간 대립을 동력으로 삼아 처음부터 끝까지 이만한 긴장도를 유지해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조금 피곤하기도 하다. 극 중 베드로 사냥(또는 불꽃 작전)으로 구체화되는 전두환 암살 기도는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26년>이 보여준 것보다 훨씬 더 엄중한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전개된다. 이들은 진흙탕 싸움을 피하지 않고, 때로 용서받을 수 없고 정당화될 수도 없는 선택을 기꺼이 감내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다만 그 과정에서 스쳐가는 단역까지도 스타 캐스팅으로 채워 넣은 것은 아쉽다. 어떤 역할에 어떤 배우를 쓸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관객의 몫이 아니지만, 때때로 캐스팅은 그 자체만으로 관객이 강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는 무언의 메시지로 기능한다. 이토록 눈에 띄는 캐스팅으로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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