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 Jul 15. 2022

파도처럼 일렁이는 사랑

박찬욱, <헤어질 결심>, 2021

* 스포일러 약함.



그동안 사랑에 관한 영화를 숱하게 보아왔음에도 <헤어질 결심>은 무척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단지 이 영화가 끔찍한 범죄와 불륜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를테면 가장 평범하게 보일 수 있는 요소마저도 감독의 개성에 힘입어 새로운 서사적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헤어질 결심>은 두 인물의 사사로운 관계를 통해 사랑이 갖는 보편적이고도 본질적인 속성을 드러내는데, 이 당연한 구도가 특별해지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우리는 박찬욱이라는 장르를 극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는 시종 관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카메라는 인물의 시선과 스크린 밖 관객의 시선, 때로는 초월적 존재나 기계의 시선까지도 자유롭게 넘나들며 중첩된 현상을 입체적으로 쌓아 올린다. 그 시선들은 종종 타인을 훔쳐보거나 중요한 비밀을 공유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관객들은 둘 사이에 은밀히 흐르는 불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굉장히 고혹적이고, 우아하며, 독특하게 어두운 사랑의 체험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이미지를 한 인물 안에 응축함으로써 영화의 전체적인 톤을 결정짓고 있는 배우는 명백히 탕웨이다. 이 영화는 탕웨이가 연기한 서래의 독보적인 이미지로 관객의 머릿속에 기억될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관점에 따르면 사랑은 매 순간 형태와 빛깔을 달리하는 것이다. 그것을 액체성이라 해도 좋고, 가소성이라 해도 좋고, 보다 직관적으로는 '물기'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물기 어린 눈에만 보이는 진실이 현상 너머에 존재하는 것만 같다. 이를 증명하듯 영화는 산에서 시작하여 바다에서 끝난다. 마른 산처럼 단단한 줄만 알았던 자아는 초반부터 서서히 붕괴하여 결국 바다에 침전한다. 해준(박해일)이 서래(탕웨이)를 은밀히, 하지만 서로에게는 공공연히 알려져 있는 시선으로 주시하던 순간부터 조금씩 조금씩. 소리 없이 차오르던 밀물이 마침내 모래성을 삼키듯.


사랑은 균형과 안정을 담보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파도처럼 한 순간에 덮쳐오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잉크처럼 서서히 번져가는 것. 사랑의 설렘이 그렇고 이별의 아픔이 그렇고 상실의 슬픔 또한 그럴 것이다. 감정은 종종 그것을 느끼는 주체를 초월하여 제 의지를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해준과 서래를 위태롭게 흔드는 것은 사랑,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하는 긴장과 불안이다. 그것은 파도와 잉크처럼 다가와 온몸에 선명한 자국을 새기지만, 이내 스러져 흐릿한 감각으로만 기억된다. 그러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상흔이다. 사랑의 당사자가 그것을 자각할 새도 없이, 만져지지도 않는 상흔은 언제나 의식보다 깊은 곳에 각인된다.


사랑에 관한 한 의심과 확신은 중첩되어 있다. 흐르는 물길의 윤곽이 하나의 선으로 확정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과 불안, 의심과 확신의 경계도 시시각각 다른 곳에 그어진다. 이렇듯 좀처럼 확정되지 않는 사랑의 본질은 영화에서 '미결'이라는 모티프로 치밀하고도 집요하게 이어진다. 해준은 산에서 추락한 남자의 변사 사건을 맡은 담당 형사이고, 서래는 죽은 남자의 아내이면서 중요한 용의자다.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싼 두 인물의 표면적인 관계는 영화의 후반부에 한 번 더 반복되는데, 이 두 묵직한 사건이 해준과 서래를 데리고 가는 지점은 결국 미결로 남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영원히 미지의 영역에 놓일 수밖에 없는 사랑이다. 그것은 존재하지만 실체를 알 수 없고, 누구에게나 만져지지만 아무에게도 잡히지 않는 무엇이다. 이들에게 사랑은 물과 같아서 그 시작과 끝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서래의 말은 어쩌면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사랑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인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방, 삶이 지향하는 필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