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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Mar 23. 2023

삶으로 빚어낸 역사의 굴곡

김종일 작가 작품론

계간지 《아동문학평론》 2023년 봄호에 실은 글입니다. 소설 『백제 소년 무사 계륵치』(2021), 『나는 날고 싶다』(2010), 『내 마음의 꽃밭』(2010) 등 다수의 작품을 쓴 김종일 작가 작품론입니다.




1. 들어가며


역사는 시대에 따라 초점을 달리한다.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갖는 의미는 때마다 새롭게 재해석되며 그 안에 동시대 인민의 규범과 가치관이 투영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지금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무게가 실리는 시기이다. 군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외교 이야기를 정사나 실록으로, 민중의 생활상을 기록한 이야기를 비사나 야사로 분류하는 방식은 현대에 들어 더는 그 유용함을 입증하기 어렵게 되었다. 복잡해진 시대는 그를 증언하는 방식에 있어 필연적으로 더욱 정교한 감각을 요구한다.

그 감각은 평범한 사람들, 이를테면 전근대적 관점에서는 주목받을 이유가 별로 없어 보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빛을 발한다. 현대의 문학은 그렇게 반짝이는 순간들을 포착하여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고뇌를 증언한다. 모종의 역사적 기능을 수행하는 문학의 창을 건너는 순간부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사이에 흐르는 역사의식을 마치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듯 생생한 감각으로 마주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이전까지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인간의 삶이 어느덧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끊임없이 역사를 창조하고 재구성해나가는 주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그것을 매 순간 의식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간혹 절묘하게 문학적인 순간들을 통해 불현듯, 우리가 각기 떨어진 점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 위에 타인과 이어진 선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한다. 즉, 문학으로서의 역사가 갖는 특징적인 매력은 독자의 무의식에 가라앉아 있던 역사에 대한 감각을 의식의 층위로 끌어올리는 데에 있다.

위와 같은 다분히 투박하고 굵직한 전제를 기반으로 하여, 이 글에서는 김종일의 소설 『백제 소년 무사 계륵치』(2021), 『나는 날고 싶다』(2010), 『내 마음의 꽃밭』(2010) 세 작품을 살펴보고 그의 작품 세계 안에 드러난 역사의식을 짚어보도록 한다.


2. 어두운 시대에 맞서는 소년


김종일의 작품 속에서 소년 주인공이 맞서 싸워야 하는 대상은 불의한 세계이다. 악을 표상하는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나, 보다 본질적인 층위에서 작품이 문제시하는 현상은 시대의 모순으로부터 기인한다. 그 모순을 오롯이 형상화하기 위해 작가는 참혹한 시대의 음지에서 고통받는 소년을 전면에 내세운다.

『백제 소년 무사 계륵치』는 백제가 멸망한 660년 여름부터 전개된 백제수복운동기를 배경으로 한다. 즉, 주인공 ‘계륵치’는 망국의 무사다. 작품 속에서 그가 내내 염원하던 백제수복의 꿈은 663년 여름의 백강 전투에서 실질적으로 좌절되고 말 것이다. 계륵치가 어떤 눈부신 활약을 하더라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획정한 한계선이다. 계륵치의 인품이 얼마나 훌륭하든, 그가 얼마나 빼어난 무예를 지니고 있든, 그가 얼마나 사력을 다해 분투하든, 역사가 뒤집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독자는 그 사실을 염두에 둔 채로 이 소설을 읽을 것이다.

때문에 계륵치에게 부여되는 서사에서, 긴장감은 플롯 단위로 형성되지 않는다. 무사로서 계륵치의 기량은 때마다 그에게 찾아오는 적수의 기량을 큰 폭으로 상회한다. 계륵치가 잠깐의 위기에 빠지더라도 독자는 그리 긴장하지 않는다. 그가 곧 신기에 가까운 무공으로 상황을 헤쳐나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각각의 플롯을 완결된 서사로 읽는다면 계륵치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영웅담에 가깝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영웅에게 승리의 영광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백제 소년 무사 계륵치』가 쌓아 올리는 긴장감은 계륵치의 이상이 엄혹한 시대와 어긋나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결정적으로 파생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매우 의미심장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패배가 이미 최종적으로 결정된 싸움에서 독자는 어떤 의미를 건져 올릴 수 있는가. 작가가 당대의 역사를 부분적, 선별적으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승자의 관점을 취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을 안고 다음 작품을 보자. 시대와의 불화에 관한 주제 의식은 『나는 날고 싶다』에서 한층 강화된다. 작중에 묘사되는 풍경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이 이야기의 배경에는 1980년대 초중반의 서울이 느슨하게 혼재한다. 주인공 ‘종수’는 청량리 일대에서 건달들의 대장 노릇을 하는 ‘독사 형’ 밑으로 들어가 구두닦이 일을 하며 골목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학교에도 못 다니고 형들에게 맞아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종수가 못내 안쓰럽다. 종수가 친누나처럼 믿고 따르는 ‘혜련이 누나’는 청량리 집창촌에서 매춘업에 종사한다. 이러한 인물 도식은 이 작품이 21세기의 청소년 독자를 전제로 쓰였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일면 낯설고 당혹스럽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이 당혹스러움은 곧 하나의 명징한 메시지가 되어 서사의 기저에 단단히 자리매김한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열악한 환경에 내몰린 이들을 통해 작가는 선한 개인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화합할 수 없는 시대의 불의를 힘 있게 역설한다.

요컨대, 김종일의 소설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인물들은 억압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이는 약자를 대변하고 있다. 작가의 비상한 시선은 시종 더 여리고 약한 이들에게로 향한다. 『내 마음의 꽃밭』에서 그 시선이 주목하는 인물은 열 살 남짓한 어린이이다. 작중 내내 ‘소년’으로 호명되는 주인공 ‘김 염’은 의붓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시의 변두리에서 누나와 단둘이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안집 아이 ‘창수’는 사사건건 소년에게 시비를 걸고, 학교에서는 몇 달째 밀린 기성회비 때문에 구박을 받는다. 1970년대 한국의 씁쓸한 단면이다. 당연하게도 이것들은 열 살 남짓한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짐이다. 김종일의 작품 속 소년은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친절과 배려를 좀처럼 경험하지 못한 채로 가뭄 같은 삶을 이어간다. 왜 삶은 유독 어떤 이들에게만 이리도 잔인한가.

앞서 제기했던 질문은 이번에도 역시 유효하다. 이토록 모질게 묘사된 현실에서 독자는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가. 작가는 어째서 가녀린 이들의 세계를 이야기에서조차 찬란히 빛나는 모습으로 그리지 않는가. 일관된 주제 의식에 관한 질문은 궁극적으로 실존하는 개인들을 관통하는 모종의 역사의식으로 귀결된다. 이를테면 그것은 잊힌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유구히 역사를 살아갈 모든 평범하고 강인한 삶에 대한 존중이다.


3. 기록되지 않은 삶에 대한 경의


모든 사람의 삶을 객관적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언제나 미완의 형태로 남아있다. 다시 말해 역사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갚지 못할 빚을 지고서만 자신의 존재를 가까스로 드러낼 수 있다.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위대한 영웅들의 서사시는 주목받지 않는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고 스러진 무명의 아군과 적군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역작이다. 즉, 무명의 삶이 역사에 선행한다.

거시적인 역사의 기로에서 당사자로 소환되었으나 이름을 남기지 못한 그들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 현대로 재소환된다. 『백제 소년 무사 계륵치』의 주인공 계륵치는 폐허가 된 황산벌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는 앳된 소년의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소년을 무사로 만드는 것이 다름 아닌 전쟁임을 암시하는 도입부인데, 그 무대가 황산벌이라는 것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한반도 역사에서 소년 무사로 가장 널리 이름을 알린 관창이 전사한 곳이 바로 황산벌이기 때문이다. 신라의 화랑 관창은 황산벌 전투의 판세를 가르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백제에도 그와 같은 인물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관창이 사망한 자리에서 계륵치의 서사를 펼쳐 나간다. 이는 당시 주저앉은 나라에 끝내 희망을 버리지 못했던 모든 이름 없는 백제인의 삶에 대한 경의의 의미를 띠게 된다. 또한 압축적으로 기록된 역사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민초의 이미지를 서사의 시작점으로 의미 있게 다루었다는 데에서 이 작품의 현대적 감각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삶에 대한 존중은 『내 마음의 꽃밭』과 『나는 날고 싶다』에서도 특징적으로 발견된다. 이 작품들이 각각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한국, 그러니까 이제는 다분히 낯설어진 한국 사회의 지나간 단면을 반영하고 있음에도 지금의 아동·청소년 독자에게 의미 있게 수용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그에 따르면 시대의 굴곡을 빚어내는 것은 영웅의 발자취가 아니라 범인(凡人)의 삶이다. 평범하게 불행하거나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불행한 삶의 흔적들은 기나긴 역사의 흐름 위에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이다. 가족 형편에 따라 떠돌아다니는 염이와 청량리 구두닦이 무리의 막내 종수처럼 일찍부터 가혹한 환경에 내던져지는 인생들이 지금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 인생들이 엄존하는 한 그것은 결코 한때의 추억이 될 수 없으며 문학은 절대로 그들을 도외시할 수 없다. 나아가 지난날 이와 유사한 진통을 겪고 자랐던 민중의 삶은 끊임없이 다시 소환되어야만 한다. 이 맥락에서 김종일의 작품은 일종의 시대적 증언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이런 유의 작품은 재미를 잣대로 삼아 함부로 재단하기 어렵다. 『나는 날고 싶다』, 『내 마음의 꽃밭』과 같은 김종일의 소설들을 ‘재미있다’는 말로 표현하기가 망설여지는 것은, 그것이 뚜렷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실존했던 개인의 삶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된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저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은 내게 무감각하고 무미건조한 일로 느껴진다.

그래선지 김종일은 그의 작품 속 배경이 되는 공간을 아름답게 치장하거나 극적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그저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일관된 톤으로 적어 내려갈 뿐이다. 나는 이것이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가장 겸허한 자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기네 삶으로 손수 굴곡진 역사를 빚어낸 사람은 모두 그런 소박한 경의를 받을 자격이 있다.


4. 알아야 할 진실


많은 문제가 빠르고 손쉽게 해결되는 세상이다. 현상은 동시다발적이고 그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손안에 만능이라는 기계를 하나씩 쥐고 살아가지만, 그조차도 느리고 약한 이웃을 기다려줄 줄은 도통 모른다. 이런 세상의 사각에서, 녹록지 않은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피와 땀과 눈물은 쉬 잊히고 만다.

그렇게 잊힌 이들의 뿌리를 찾아 다시금 세상에 내어놓을 책무는 오롯이 문학의 영역에 남겨진다. 그것은 단지 ‘이전에도 이렇게 힘들게 산 사람들이 있었다’라는 식의 아련한 회상으로 그쳐선 안 된다. 과거의 한 도막을 가져다 시대의 명암을 펼쳐내고, 이를 통해 동시대의 자화상을 드러내어야 한다.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현재를 말하고 나아가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역사를 인식하는 오랜 방법론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지난 삶을 비추는 문학작품을 통해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김종일의 소설을 읽는 독자가 경험하게 되는 것 또한 바로 그러한 인식의 입체감이다. 그는 혼탁한 과거의 실타래에서 시종 기억되어야 하는 이들의 삶을 한 가닥씩 묵묵히 끌어올린다.

역사는 단편적인 사실들의 파편이 아니므로, 역사를 부분적으로 재현하는 문학작품 역시 구체적인 삶의 맥락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김종일은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 머무는 삶들을 가만히 응시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그의 인식을 작품의 주제로 드러낸다. 그 안에는 역사 그 자체보다도 실존하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 먼저 들어있다.

그리하여 독자는 황홀하지 않은 세계에서 평범한 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역사적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된다. 눈에 띄는 재능을 타고나지 않아도, 주목받을 만한 업적을 달성하지 않아도, 때로 부단한 노력이 기대한 만큼의 결실을 맺지 못해도, 거대한 역사의 흐름 안에 몸을 싣고 있는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는 진실 말이다. 역사 속 승자의 관점과 인위적으로 미화된 세계관은 바로 이 당위 명제 앞에서 얼마간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역사에서 깨달아야 할 진실은 그렇게 문학의 창을 건너 비로소 우리의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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