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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Aug 24. 2022

슬픔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

케이트 디카밀로,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비룡소, 2009

* 쪽수: 201쪽



케이트 디카밀로Kate DiCamillo에 대해서는 전에 필리파 피어스의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Tom's Midnight Garden』를 소개할 때 잠깐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2018년에 쓴 글 「왜 동화는 약간 슬퍼야 하는가」는 21세기 아동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문이지요. 아직 안 읽어보신 분들을 위해 원문과 김명남 번역가의 역문 링크를 올려두겠습니다. 글에 나오는 맷 데 라 페냐의 『너는 사랑이야!LOVE』, E. B. 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Charlotte's Web』도 함께 읽어보면 좋겠죠.


「Why Children’s Books Should Be a Little Sad」 – Kate DiCamillo

「왜 동화는 약간 슬퍼야 하는가」' - 케이트 디카밀로(김명남 번역)


케이트 디카밀로의 글을 읽고 나면 동화를 보는 눈이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그는 동화가 약간 슬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슬퍼도 된다거나 슬플 수도 있다는 말 대신 슬퍼야 한다는 단호한 표현을 사용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어떤 슬픔은 비슷한 결의 슬픔으로만 달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슬픔을 오롯이 이해하고 위로하기는 정말 쉽지 않지요. 백 명의 사람에게는 백 명의 서로 다른 슬픔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에게 위로를 받는 것은 운 좋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입니다. 그밖에 다수는? 별 수 없이 이야기의 세계를 서성거리게 되는 거죠.


평범한 우리는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힘든 시기를 견뎌낼 희망과 용기를 얻습니다. 슬픈 이야기들은 인생의 가장 어두운 구간을 지날 때 발밑을 밝혀주는 작은 등불이 되어줍니다. 이 작은 불빛이라도 없으면 누군가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말겠죠. 물론 어린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혼자서 외롭게 불을 밝히고 있는 어린이 독자가 세계 곳곳에 얼마나 많겠어요. 그러니 케이트 디카밀로의 말대로 동화는 약간 슬퍼야 한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케이트 디카밀로가 2006년에 발표한 작품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The Miraculous Journey Of Edward Tulane』은 독특하게 슬픈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툴레인은 도자기로 만든 토끼 인형입니다. 이것부터 이미 불안하지요.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 캐릭터의 위태로운 질감은 독자의 불안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누군가가 에드워드를 함부로 다룰 때마다 독자는 혹시 인형이 깨져버리지는 않을까 마음 졸이게 되지요. 처음에 에드워드는 애빌린이라는 소녀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도 사랑이 뭔지, 그것이 왜 소중한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애빌린 가족을 따라 배를 타고 이집트에서 런던으로 가는 도중 바다에 던져져 깊숙이 가라앉게 됩니다. 사랑을 깨닫기 위한 에드워드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지요. 에드워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결의 슬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에드워드가 이야기의 세계에서조차 평범한 인형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이야기가 관심을 가지고 따라가는 주인공은 스스로 뭔가를 바꾸어나갈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되잖아요. 그게 현실에서 말이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에드워드가 한낱 인형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그가 주인공인 세계에서는 말을 하거나 깡총깡총 뛰어다니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는 겁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 하나도 까딱하지 못하지요. 이게 어떻게 '신기한 여행'이 될 수 있을까요.


제목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The Miraculous Journey Of Edward Tulane입니다. 한국어 제목에선 'Miraculous'를 '신기한'이라고 번역했지만 이야기의 전체 내용을 보면 '기적적인'이라는 원제의 의미가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는 이 안에서 경험적 현실의 한계를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해요. 그럼에도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발견되고 이름 붙여지고 사랑을 받고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존재의 의미를 알아가게 되지요. 그리고 마침내 긴 세월이 흘러 애빌린과 재회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뿐이었던 에드워드가 수십 년 여정 끝에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는 결말은 신기하다는 말로 다 표현이 안 됩니다. 에드워드의 여정은 한 편의 기적입니다. 전 이 작품의 한국어 제목이 '에드워드 툴레인의 기적의 여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케이트 디카밀로는 동화가 슬픔에 관한 진실을 말하되 그것을 독자가 감당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답은 사랑에 있다고 했지요.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은 그런 작가의 신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몰랐던 에드워드가 사랑을 찾아가는 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이것이 슬픔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역시 깊이 있게 묘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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