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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Aug 19. 2022

전적으로, 어린이의 세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시공주니어, 2020

* 쪽수: 208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의 1945년 작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은 한국의 40대 이상 성인 독자에게는 <말괄량이 삐삐>라는 제목의 TV 시리즈로 더 많이 기억되고 있을 겁니다. 1979년에 KBS에서 방영된 외화의 에피소드는 13개였는데, 2020년에 EBS에서 방영된 재더빙판 시리즈는 8개가 추가되어 총 21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삐삐의 얼굴은 여기에 나온 배우 잉에르 닐손의 것이죠.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의 스웨덴 원제는 'Pippi Långstrump'입니다. 주인공의 이름만으로 되어 있는 약간 건조한 제목인데, 이게 미국에서 'Pippi Longstocking'이 되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한때 일본판의 제목은 '긴 양말의 삐삐'였는데 아마도 주인공의 이름에 들어간 'Longstocking'을 '긴 양말'로 번역한 것 같죠. 우리나라에서도 초기에는 '긴 양말을 신은 피피'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국민서관의 문고본이 있었습니다. 읽어보고는 싶은데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아픈 딸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든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딸이 직접 지었다고 하는데 풀네임이 아주 깁니다. 삐삐 롱스타킹은 일종의 애칭이지요. 메인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 동화책은 세 권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제목은 순서대로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꼬마 백만장자 삐삐』, 『삐삐는 어른이 되기 싫어』인데, 모두 원제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원제를 직역하면 각각 '삐삐 롱스트룸프', '삐삐 배를 타다', '삐삐 남쪽 바다로' 정도가 되거든요. 전 '말괄량이 삐삐'가 가장 익숙하고 또 마음에 듭니다.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영향이겠죠.


이제 책의 내용으로 넘어가 볼까요. 작가란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지어내는 사람입니다. 뛰어난 작가는 재미있는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역시 대단한 작가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중에서도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이 특히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 삐삐 또한 그런 작가적 기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삐삐는 훌륭한 거짓말쟁이입니다. 전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운 것 자체가 획기적인 발상이라고 봐요.


2022년에도 어른들은 여전히 어린이의 거짓말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런데 린드그렌은 무려 1945년에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세웠습니다. 게다가 삐삐는 거짓말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도 거의 없지요. 오히려 어떤 거짓말은 위풍당당하고 거침없는 삐삐의 매력을 한껏 더해줍니다. 그리고 저에겐 이것이 굉장히 따뜻한 메시지로 느껴집니다. 실제로 어린이들과 지내다 보면 티 나게 거짓말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거든요. 그럴 때 전 타인에게 명백히 해가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곧잘 웃어넘기곤 합니다. 거짓말은 물론 잘못된 행동이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고, 어린이의 경우라면 그렇게 수치스럽게 만들어서 해결할 일도 아닙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로 이해하고 다가가야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도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동안은 많은 비판에 시달려야 했지요. 그 비판은 주로 오만불손하고 제멋대로인 삐삐가 올바르게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힘이 세고 돈도 많은 삐삐가 어른들의 규칙에 구애받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이 당시 사람들의 통념에는 어긋났던 겁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곳은 사실상 전적으로 어른들의 세계입니다. 동화의 일차적인 목표는 이걸 어린이의 세계로 바꾸는 것이죠. 그럴 때 가장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동화 속 세계관 자체를 별도의 판타지 공간으로 구축하는 것인데, 이 작품은 그걸 아주 간결하면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해내고 있습니다. 여기에선 판타지 공간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삐삐라는 인물과의 거리에 따라 판타지의 강도가 달라지지요. 사람들이 삐삐에게 가까이 가면 그곳은 어느덧 어린이의 세계로 바뀌어 있고, 돌아 나오면 다시 어른들의 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극적인 변화를 체험하는 인물들은 삐삐의 친구인 토미와 아니카고요. 그러니까 이 책을 읽는 어린이 독자는 저마다 토미와 아니카가 되어 삐삐의 세계에 들어갔다 나오게 되는 것이죠.


이 글을 쓰려고 여기저기서 삐삐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보았는데, 그중 몇몇 댓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예전에 볼 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삐삐의 행동들에 화가 난다'는 얘기들. 당연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른일 거고, 삐삐가 존재하는 곳은 전적으로 어린이의 세계니까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크고 난 뒤엔 제 어릴 적 기억이나 감각들에 별 관심이 없지요.


(이 글을 다 쓰고 발행하기 전 혹시 몰라 브런치 키워드에 검색해보았는데, '아스트리드린드그렌'이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린드그렌은 그런 소박한 경의를 표하기에도 참 잘 어울리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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