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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Aug 28. 2022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야기

손원평, 『위풍당당 여우 꼬리 1: 으스스 미션 캠프』, 창비, 2021

* 쪽수: 164



손원평의 동화 『위풍당당 여우 꼬리』는 구미호 설화를 모티프로 기획된 시리즈입니다. 현재 2권까지 나와 있는데 꼬리의 개수만큼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설정이니 앞으로 꾸준히 나올 겁니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선하고 평범한 주인공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깁니다. 주인공은 혼란에 빠지지만 결국 이를 발판으로 삼아 성장하게 됩니다. 이건 스토리라인이라기보다 하나의 공식이고, 이야기의 전제 조건이에요. 이걸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본에 충실한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어디선가 읽어본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제게 이 작품의 느낌은 아직까지는 후자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처음부터 긴 시리즈로 기획된 이야기다 보니 아무래도 1권은 설정 가이드북이나 프리뷰 느낌도 조금 나는 것 같고요. 익숙한 판을 깔아 뒀으니 갈수록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주인공 '손단미'는 11살 여자아이입니다. 어느 깊은 밤 잠에서 깨어난 단미는 제 몸에서 솟아난 꼬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야기는 이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혼란스러운 상황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지요. 단미는 학교에 가서도 온통 꼬리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꼬리의 존재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신체적 변화의 은유로 읽히기도 하지요. 이러한 은유는 이 작품의 중요한 메시지와도 잘 어울립니다.


단미의 여우 꼬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학교에서도 나오고 엄마 차 안에서도 나오죠.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단미가 엄마에게서 구미호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엄마의 설명에 따르면 꼬리는 의지와 감정을 지닌 또 다른 자아입니다. 하지만 단미는 자신에게 다른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연히 독자는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나'와 '내가 싫어하는 나'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지요.


한편 이 작품에서 중요한 사건은 대부분 학교에서 벌어지는데, 배경이나 분위기 묘사의 디테일이 매우 좋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2020년대의 학교에 다니며 실제로 겪을 법한 일들이 깔끔하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학교 생활이나 또래 친구와의 관계 묘사에 있어서 디테일을 이렇게 잘 살린 작품을 만나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자연히 몰입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지요.


최근 나오는 동화에서 자주 걸리는 것 중 하나가, 작가가 이야기 재료를 자신의 어릴 적 경험에만 의존하여 찾는다는 겁니다. 시대 감각이나 문화 코드가 맞지 않아 독자에게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지요. 그럴 때 플롯은 자주 어색하고 붕 떠 있게 됩니다. 손원평의 동화는 이 지점에서 강력한 비교 우위를 갖습니다. 『아몬드』에서 보여주었던 디테일의 강점은 동화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네요.


'으스스 미션 캠프'는 단미가 다니는 미래초등학교에서 해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열리는 축제입니다. 정식 명칭은 '교내 한마음 캠프'인데, 학교에서 모둠별로 캠핑을 하면서 저녁 미션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으스스 미션 캠프라고 부르죠. 캠프에서 단미와 친구들은 모둠별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친구가 사라지는 위기를 겪게 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단미의 꼬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1권의 결말에서 단미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뒤 비로소 꼬리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낯설고 불편한 내 모습도 나의 일부로 수용함으로써 성장하는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느 날 갑자기 여우 꼬리가 돋아난 주인공에게 일어난 일 치고는 아직 좀 밋밋하죠. 여우 꼬리를 사춘기의 신체적 변화로 해석하면 이 이야기는 현실의 틀 안에서 100% 작동 가능해집니다. 구미호의 모티프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장치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런 점에서 이 시리즈의 에피소드가 최소한 꼬리의 개수만큼 이어질 것이라고 처음부터 암시한 것은 영리한 선택입니다. 1권은 사실상 전체적인 설정을 소개하는 밑작업일 뿐이고, 단미의 여우 꼬리가 늘어가면서 점점 매력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 기대하게 만들기 충분하지요. 제게는 이후 펼쳐질 이야기가 어떻게 발전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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