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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an 26. 2023

빈자리를 채워가는 여정

정은주, 『기소영의 친구들』, 사계절, 2022

* 쪽수: 152쪽



'죽음을 말하는 동화', 했을 때 저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2000)입니다. 이 작품이 21세기 한국 아동문학에 미친 영향은 가히 독보적이죠. 2011년에 이미 백만 부를 돌파했고,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을 때에는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혁명'이라는 수식이 곧잘 따라붙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당시 분위기는 그랬어요.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대중에게 어필한 포인트는 '모성'과 '희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한 키워드는 '잎싹의 꿈과 성장'이었다고 하지만, 아주 많은 독자와 관객이 이 작품에서 숭고한 모성과 헌신, 나아가 죽음이란 코드를 더 강하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결코 비약이 아니었지요. 이야기 속 '족제비'는 '잎싹'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시종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그것을 이겨내는 동력은 잎싹의 모성으로부터 비롯되고요. 이러한 모성의 묘사는 작품에 대한 독자의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불호 측 주장은 잎싹의 꿈을 모성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란 존재의 의미를 축소, 도구화했다는 것―이런 비판은 원작보다는 주로 영화를 향해 있었습니다―이었는데, 글쎄요. 그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동화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잎싹은 이야기의 결말에서 족제비에게 제 목숨을 내어줍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천적인 족제비에게도 먹여 살려야 할 새끼가 있기 때문이었고요. 이는 익숙한 동화적 관습에 비추어 보자면 다소 충격적인 결말이었습니다. 잎싹의 여정을 내내 함께 해온 독자는 이 대목에서 무언가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그리 터무니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의 결말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고, 전 그것이 이야기가 닿을 수 있는 굉장히 수준 높은 경지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잎싹은 어느 조용한 덤불 속에서 편안히 눈을 감을 자격이 있지만 이야기는 그런 결말로 나아가지 않았지요. 대신 그가 내내 맞서 싸웠던 죽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그 의미를 극적으로 강조하는 결말을 택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죽음으로 생겨난 공백은 다른 삶으로 채워질 때 그 의미가 완성됩니다. 이 관점에 동의한다면 『마당을 나온 암탉』은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서 발표되었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죽음의 본질을 깊이 응시한 동화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한 관점의 연장선에서, 오늘 새롭게 소개할 『기소영의 친구들』 역시 죽음의 본질을 직시하는 동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목에 등장하는 '기소영'은 이야기의 시작과 함께 죽음을 맞게 되는데, 그에 대한 내막은 처음에는 단편적인 소식으로만 언급됩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기소영이 부반장이었다는 것과 시골에 갔다 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부모님과 함께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하지만 껍데기뿐인 사실의 나열은 기소영에 대해 어떤 의미 있는 진술도 되어주지 못합니다. 기소영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이후 기소영의 친구들에 의해 서서히 드러납니다. 즉, 이 작품의 무게 중심은 '기소영'이 아니라 기소영의 '친구들'에게 있습니다.


6학년 3반 기소영의 친구들은 '박채린', '남나리', '김영진', '서연화'이고, 서술자는 박채린입니다. 채린이는 반장이고, 일면 무신경하고 무뚝뚝한 구석이 있습니다. 소영이가 죽은 다음 날 등굣길에 마주친 모르는 어른에게 '6학년 3반 기소영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라고 무심하게 말하는 데서 그런 성격이 단적으로 드러나지요. 나리는 그런 채린이에게 '말을 너무 쉽게 막' 한다며 화를 냅니다. 채린이는 자신이 별생각 없이 던지는 말과 행동이 주변 친구들의 날 선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소영이의 빈자리를 또렷이 인식하게 됩니다. 소영이는 알게 모르게 채린이를 깊이 이해하고 다른 친구들과 중재하는 역할을 해왔던 겁니다.


이야기의 1인칭 서술자인 채린이가 다분히 무신경하고 다른 친구에게 별 관심 없는 인물처럼 보이도록 한 설정은, 채린이가 소영이의 죽음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을 점차 깨달아간다는 내러티브의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심장해집니다. 소영이는 채린이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제가끔 속 깊은 사연을 품고 있었거든요. 이제 소영이가 떠난 자리에서 그 사연을 이어가는 것은 채린이의 몫입니다. (실제론 네 친구 모두의 몫이겠지만, 이 이야기는 채린이의 시점에서 흘러가고 있으니까요.) 채린이는 소영이뿐만 아니라 나리, 영진이, 연화에 대해서도 새로운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고, 이는 물론 각각의 사연을 둘러싼 서사 전체를 한껏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독자는 어린이의 죽음을 그저 '안타깝고 불행한 사건'으로만 여기는 관습적인 태도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죽음을 직면하고 숙고하고 애도하는 과정을 깊이 체험하게 되지요.


이 작품에서 소영이는 현실적으론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친구들의 회상이나 꿈속에서만 간간이 등장하지요. 그런데도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맨 마지막 장의 일러스트에 담긴 소영이의 모습을 보면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만큼 기소영의 친구들이 소영이를 중심에 두고 나선형으로 쌓아 올리는 이야기들은 강한 현실의 울림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린이의 죽음을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감각적이고 입체적으로 바라본 『기소영의 친구들』은 22년 전 『마당을 나온 암탉』이 주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의 감동을 우리에게 안겨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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