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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an 30. 2023

세계를 확장하는 시선

나딘, 제라르, 『우리가 탑 위에서 본 것은』, 웅진주니어, 2022

* 쪽수: 72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탑 이야기는 아마 '바벨탑' 이야기일 겁니다. 창세기 11장에 나오지요. 제가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한 건 10살 안팎이었을 텐데, 어린 나이에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건물을 짓기로 마음먹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오만함에 분노한 야훼가 인간의 언어를 뒤섞어 공사를 중단시켰다는 게 대략적인 줄거리입니다.


물론 이 정도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갖은 기행에 비하면 별 거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의문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성경에서 묘사하는 야훼가 인간 군상의 총합을 아득히 뛰어넘는 그야말로 초월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전지전능한 존재가 고대인의 탑 쌓는 행위를 신의 권능에 대한 도전으로 읽었다는 것이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는 것이죠. 그에 대한 대응이 언어의 교란이었다는 점 또한 기발하긴 해도 그리 좋은 결정은 아닌 것 같고요. 하긴 성경에는 이런 식으로 앞뒤가 잘 안 맞는 옛이야기들이 아주 많고, 사실 그래서 더 매력적이지요.


어쨌거나 이걸 이해하려면 창세기가 지금과 비슷한 내용으로 틀이 잡힌 시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넓게 잡아도 기원전 5-6세기를 벗어나지 않지요. 세계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가 탐구방법론의 하나로 뿌리내리는 시점은 그로부터 2천 년도 더 뒤에 도래하고요. 결국 탑을 쌓아 올려 하늘과 세계를 좀 더 잘 이해해보려 했던 발상은 당시로선 터무니없는 공상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공상을 과감히 실행에 옮긴 일부 괴짜들의 시도는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을 테고요.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오늘날 새로 쓰이는 탑 이야기는 성경에 나온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테드 창의 데뷔작 「바빌론의 탑」(1990)에서는 바벨탑이 정말로 하늘 끝 천장에 닿습니다. 그리고 그 탑의 꼭대기에서 주인공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신의 분노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와 함께 독자의 뇌리에는 작품 속 세계가 하나의 입체적 구조로 각인되지요. 이 세계의 야훼는 인간의 사업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고층 빌딩 짓는 사람들이 신성모독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니까요.


나딘 로베르가 쓰고 제라르 뒤부아가 그린 그림책 『우리가 탑 위에서 본 것은Au-delà de la forêt』 역시 변형된 바벨탑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2016년에 출간되었고요. 미지의 숲 너머의 세계를 보기 위해 돌탑을 쌓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빠와 '나(아튀르)'는 그림 속에서 토끼의 모습을 하고 있고, 이들은 검은 숲으로 둘러싸인 농장에서 강아지 '단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토끼들이 인간처럼 집을 짓고 옷을 입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피터 래빗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문에 따르면 검은 숲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토끼들은 아무도 숲에 들어가려 하지 않지요. 무지와 미신은 이 마을의 안녕을 유지해 주는 불문율입니다. 하지만 아빠는 숲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고민하던 아빠는 '나'에게 어마어마한 생각이 떠올랐다며 숲 너머를 볼 수 있을 만큼 높은 탑을 쌓겠다고 말합니다.


탑을 쌓기 위해 아빠 토끼가 택한 방식이 자못 흥미롭습니다. 아빠는 밀가루 반죽으로 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합니다. 빵값은 탑 만드는 데 쓰일 돌로 받고요. 마을 주민들은 기꺼이 돌을 주워다 빵으로 바꾸어 갑니다. 그렇게 아빠는 호혜적인 거래를 통해 탑을 쌓는데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지요. 어쩌면 이건 아주 영리한 전략입니다. 지금 아빠가 하려는 일은 사실상 마을을 지배하는 무지의 룰을 깨는 거잖아요. 숲 속 괴물의 존재를 믿는 다른 토끼들의 입장에서 아빠의 행동은 멀쩡히 돌아가는 마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빵과 돌을 맞바꾸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그러한 위화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을 토끼들은 아빠가 벌어들인 돌로 탑을 쌓고 있다는 걸 알고도 계속해서 빵을 사갑니다.


아빠와 ''는 어설프게 돌탑을 쌓아 올려 보지만 어느 날 몰아친 태풍이 탑을 허물어버리고 맙니다. 실의에 빠진 아빠는 탑 옆에 누워 힘없이 잠을 잡니다. 그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을의 토끼들이 찾아와 함께 탑을 쌓기 시작한 겁니다. 한 사람의 의지가 마을 전체의 신념을 뒤집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죠. 그렇게 모두의 노력으로 전보다 훨씬 견고한 나선형의 탑이 완성됩니다.


이제 아빠와 '', 강아지 단톤은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완성된 탑 위에 오릅니다. 이들은 과연 탑 위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요. 질문에 대해 책의 마지막 장은 유쾌하고 간결한 답을 내어줍니다. 이 작품의 원제를 직역하면 '저 편 숲 너머에' 정도가 될 텐데, 여기서 '너머Au-delà'라는 말은 현실 세계와 접점이 없는 또 다른 세계를 뜻하는 표현입니다. (한국에서 관용적으로 쓰이는 '저세상'에 가까운 느낌이라네요.) 다 읽고 나면 제목에 왜 이런 말을 넣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요컨대 이성의 선이 닿지 않은 세계는 현실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해도 지금 여기와 연결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세계를 확장하는 동력은 대상을 편견 없이 곧게 응시하는 행위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탑을 쌓아 세계의 진실을 탐구하고자 했던 아빠 토끼의 태도는, 하늘 밖 가늠도 안 되는 별들의 우주로 우리의 인식을 확장시킨 위대한 시선들에 맞닿아있는 것이죠. 앞으로 새로 지어질 수많은 바벨탑들 위에서 바라보게 될 세계에 대해 아득한 경외감을 자아내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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