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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Feb 12. 2023

타인의 우주를 향해

장한애, 『홈스테이는 지구에서』, 웅진주니어, 2022

* 쪽수: 188쪽



주인공 '공유수'의 집은 외계인이 머무는 홈스테이 숙소입니다. 홈스테이 사장은 유수의 엄마 '공해나'고요. 이곳에는 다양한 외계인이 머물고 있습니다. 그들은 에이전시의 심사를 거쳐 유수네 홈스테이에 왔습니다. 유수는 그들을 외계인이라는 말 대신 '우주여행자'나 '방문자'라 부르지요. 외계인이 지구에 머물다 가는 것이 공공연히 가능해진 세계라는 설정인데, 그럼에도 이야기 속 지구는 여전히 외계인 폭로 단체가 기승을 부리는 폐쇄적인 공간입니다.


홈스테이 직원들은 골치 아픈 일에 엮이지 않기 위해 우주여행자에 관한 업무를 사람들 몰래 처리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이 이야기가 성간 여행이 가능한 세계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현실적으론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을 선명하게 드러내지요. 이건 SF만 그런 게 아니라 실은 거의 모든 이야기가 지닌 공통점이기도 해요. 문학은 기본적으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단면을 포착하여 드러내는 방식으로 의미를 획득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야기란 인간의 상상이 허용하는 가장 먼 곳까지 가더라도 결국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물론 『홈스테이는 지구에서』는 애초에 그렇게 멀리까지 갈 생각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특별한 손님들이 머문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 이야기 속 배경은 그냥 한국의 현재입니다. 작품에 녹아 있는 사회적 메시지가 매끄럽게 이해되는 것은 이 안에 묘사된 풍경이 한국의 독자에게 전혀 낯설지 않기 때문이지요. 생각해 보면 외계인은 소수자 혐오, 차별, 소외와 같은 주제를 다루기에 알맞은 소재입니다. 이걸 뒤집어 말하면 포용과 관용, 화해와 평화를 다루기에도 알맞은 소재라고 할 수 있겠죠. 『홈스테이는 지구에서』가 독자에게 내미는 메시지 역시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요컨대, 어떻게 하면 혐오가 기승을 부리는 이 세계를 조금이라도 평화로운 곳으로 바꾸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나름의 대답이 이 작품에는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 유수는 홈스테이에 머무는 방문자들에게 한국어 속담에서 따온 특별한 이름을 지어줍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방문자의 이름을 지구인의 방식으로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이지만, 보다 중요한 의미는 방문자 한 명 한 명에게 고유한 개성을 부여하는 데에 있습니다. 외모에 신경 쓰는 방문자는 '좋은 떡(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자잘한 물건을 허락 없이 가져다 쓰는 방문자는 '바늘 도둑(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말할 때마다 몸속의 씨앗이 튀어나오는 방문자는 '말이 씨(말이 씨가 된다)', 보랏빛 물방울이 창문에 떨어지던 날 처음 만난 방문자는 '가랑비(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입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만의 방식과 목표를 가지고 지구에서 살아갑니다. 그중 가랑비는 유수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로 비중 있게 묘사됩니다.


중요한 설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유수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유수네 가족도 '일반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엄마와 둘이 홈스테이를 꾸리며 살아가는 유수는 자신이 또래 사이에서 외계인 취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들은 유수로 하여금 집 밖에서 움츠러들고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게 하지요. 그러다 같은 반 친구 '정준수'를 만나 가까워지면서 유수의 단단한 생각에도 차츰 변화가 찾아옵니다.


(두 친구의 이름을 비슷하게 한 것은 작가의 메시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 보입니다. 작가가 유수와 준수의 캐릭터를 구축해 가는 과정에는 성소수자를 연상케 하는 몇 가지 단서가 포함되어 있고, 작가는 이들을 외계인의 포지션에 상징적으로 위치시키면서 특정한 메시지를 이끌어내고 있지요. 예민한 독자는 분명 이 메시지를 놓치지 않을 겁니다.)


유수가 보기엔 준수도 만만찮은 외계인입니다. 준수는 록밴드 핑크 유니버스의 열렬한 팬입니다. 이제는 구경도 하기 힘들어진 골동품 같은 카세트 플레이어로 핑크 유니버스의 음악을 듣지요. 학교에서 숙제로 내 준 장래희망에는 '돈 많은 백수'라고 적어서 내고요. 알고 보니 준수네 집은 망한 가게의 물건을 수거하는 고물상인데, 덕분에 준수는 오래된 물건을 모으다 우연히 핑크 유니버스의 음악을 접하고 빠져들게 된 것이었습니다. 장래희망이 돈 많은 백수가 된 것은 돈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고요. 눈에 띄는 친구에게 얽힌 대단치 않은 사연들을 알아가며 유수는 자기 안의 벽을 하나씩 허물어갑니다.


외계인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타인이 실은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면, 최초의 편견은 누구로부터 기인한 것일까요. 이 이야기는 그 책임을 대상이 아니라 인식의 주체에게 지우고 있습니다. 유수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편견을 허무는 계기는 준수와 가랑비를 통해 자신과 타인의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왔지요. 즉, 대상에 대한 편견은 그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의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그러한 왜곡을 바로잡는 일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띠게 되죠.


그러는 한편, 작가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모두가 실은 외계인이라고 말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외계인, 별종 등의 프레임으로 규정짓고 외로움 속으로 몰아넣는 일이 흔히 일어나는 세상이지만, 모두가 자기만의 개성을 지닌 외계인이라고 한다면 그런 프레임 자체가 힘을 잃고 말겠지요. 작품 속에서 그것이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장치가 바로 '외계인 챌린지'입니다. 홈스테이에 머무는 손님들로부터 시작된 외계인 챌린지는 온라인 이용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자기 고백을 결합한 놀이로 확장되어 갑니다. 당연히 이곳은 모든 폭력과 혐오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으로 성립하지요. 이 작품이 제시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이 공간에 함축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까마득한 우주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고, 그 간극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어요. 결국 나에게 진실하고, 그럼으로써 타인의 우주를 향해 조금씩 다가서는 것만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하게 의미 있는 자세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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