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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Feb 25. 2023

성장보다 중요한 것

송미경, 『어떤 아이가』, 시공주니어, 2013

* 쪽수: 124쪽



동화에서 주인공의 성장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은 그간 아동문학계의 오랜 관습이자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건 동화의 주인공이 대부분 어린이라는 사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어요. 어린이는 어른에 비해 모든 면에서 성장할 여지가 다분한 존재이니까요.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특징도 있고요. 한 마디로 성장에 대해서라면 어린이 주인공은 어른 주인공보다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게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건 시대가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야기란 결국 제가 속한 시대의 특정 이미지와 가치관을 반영하게 마련인데, 지금은 어린이를 그저 미숙한 존재로만 여기는 시대가 아니거든요. 그런 흐름은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잼민이', 'O린이'와 같은 말들은 나오자마자 혐오 표현으로 꾸준히 지적받았고, '스쿨존' 안전사고나 '노키즈존'에 대한 논의도 이전보다 훨씬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쪽에는 이런 흐름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장이 있지요. 요컨대 '어린이는 이미 완전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성장은 더 이상 어린이에게 필수 과제가 아닙니다. 성장을 하든 하지 않든, 현재 어떤 상태에 머물러 있든, 어린이는 그저 어린이라는 것만으로 고유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죠.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겁니다. 몇 가지 분야에서 미숙하다는 이유로 존재의 가치가 깎여나가야 하는 세계의 풍경이란 얼마나 삭막한 것이겠어요. 그러니 어린이가 어른과 동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건, 실은 큰 틀에선 이론의 여지가 없어야 할 하나의 당위명제인 겁니다. 최근의 담론은 이러한 기류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지요.


송미경의 동화집 『어떤 아이가』에는 그러한 기류를 기민하게 포착한 단편동화 다섯 편이 실려 있습니다. 송미경은 거의 언제나 성장 그 자체보다 성장'통'을 더 중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장은 진통 이후에 찾아올 수도 있고, 어쩌면 끝내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지요. 심한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은 정체나 퇴행을 빚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송미경의 동화는 그 모든 상처를 아우르는 동시에, 어떤 경우에도 그것들이 어린이의 고유한 가치를 해할 수는 없음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어떤 아이가」에서 '문재'는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집안 곳곳에 붙어 있는 노란 쪽지를 발견합니다. 쪽지는 모두 '어떤 아이'가 썼는데, 분명 문재네 가족과 함께 지냈을 그 아이는 문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문재는 쪽지를 하나씩 읽으며 형과 아빠에게 어떤 아이에 대해 묻습니다. 아이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대신 대화의 과정에서 이들 가족이 서로에게 철저히 무관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요.


「어른동생」에서 열두 살 '하루'는 어느 날 다섯 살짜리 동생 '미루'의 전화 통화를 엿듣게 됩니다. 그리고 미루의 내면에 이미 서른네 살짜리 어른이 들어와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죠. 이어지는 미루의 설명에 따르면, 미루는 태어날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리고 세상엔 미루 말고도 그런 사람들이 꽤 있어서, 자기네끼리는 알아볼 수 있다고 하지요. 이야기는 하루가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가족들의 나이를 떠올려 보는 것으로 조용히 막을 내립니다.


「없는 나」는 몸을 갖지 못한 채로 태어난 한 아이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나'의 엄마 역시 그 사실을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이미 죽은 채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영혼의 유년기를 보내며, 살아있음으로써만 느낄 수 있는 여러 감각들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열세 번째 생일에 엄마를 떠날 때가 왔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지요.


「귀여웠던 로라는」의 주인공 '로라'는 엄마가 운영하는 쇼핑몰의 모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열 살인 로라가 더 크면 모델을 할 수 없다며 학대에 가까운 일정을 소화하게 합니다. 로라는 좋아하는 토끼 인형 '토순이'를 보며 생각합니다. '너는 더 이상 자라지 않겠지.' 이후 장면에서 토순이는 갑자기 진짜 토끼로 변합니다. 귀여운 인형과 다른 모습의 토끼를 보고 징그럽다고 말하는 로라에게 토순이는 '진짜 토끼는 다 이렇다'고 답하지요. 엄마의 카메라 앞에서 언제나 가짜로 살아야 했던 로라는 토순이를 따라 푸른 들판으로 나아갑니다.


「아버지 가방에서 나오신다」의 제목은 한국어 띄어쓰기 예시문장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의 변형이죠. 이제와 하는 얘기지만 저 문장과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어쩌고 하는 문장은 정말로 한심했습니다. 그래도 그 한심함이 아니었다면 이런 작품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겠죠. 적어도 지금과 같은 맥락으로 탄생하진 못했을 겁니다. 어쨌거나 전 농담 같으면서도 현실을 절묘하게 비틀어 보여주는 이런 작품을 아주 좋아합니다. 이 작품에서 아버지들은 전부 가방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루 세 번 가방의 지퍼를 열고 밥 달라고 손을 내밀지요. 밥을 주는 것은 엄마의 몫인데, 엄마들이 모여서 열흘 간 여행을 떠나면 아빠 돌보기는 그대로 어린이들의 몫이 됩니다. 그 옛날의 예시문장에서 느껴지던 한심함이 어떤 한국적 일상에 담긴 한심함으로 성공적으로 전이되면서 아주 기발하고 재미있는 이미지가 만들어지지요.


여기까지 다섯 작품의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해보았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것만 같은 이질감이 느껴지시나요. 아마 그 공백의 일부는 작품을 다 읽어도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송미경의 동화는 주인공의 성장으로 서사를 안정감 있게 매듭짓지 않는 경우가 꽤 있어서, 독자에 따라선 이야기가 아직 덜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거든요. 그 이질감에서 한 발 물러선 채로 이야기를 재차 읽어본다면, 독자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성장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겠죠.


이를테면 송미경의 동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아프고 불안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꾸준히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아픈 줄도 모른 채로 살아가는 어린 주인공들의 모습은 그런 맥락에서 더욱 큰 호소력을 갖게 되지요. 유년의 시간이 단지 어른을 예비하는 준비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의미를 갖는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지금은 미래의 성장 이전에 찾아오는 현재의 아픔을 더욱 유심히 살피고 보듬어야 할 때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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