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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Nov 22. 2023

희망을 품기 전 기억해야 할 것

남세오, 『기억 삭제, 하시겠습니까?』, 자음과모음, 2023

* 쪽수: 232쪽



이 글을 읽는 분들 대부분은 학창 시절에 무언가를 달달 외워본 기억이 있을 겁니다. 주로 시험을 앞둔 때였을 거고요. 20세기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학생들이 필요한 정보를 얼마나 많이, 그리고 정확하게 암기할 수 있는지를 꽤나 중요하게 보았지요. 그에 비해 요즘은 암기력을 이전처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파편화된 정보를 머릿속에 단기간 욱여넣는 게 별 의미가 없어진 겁니다. 즉 현대 인간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제반 기술의 수준에 따라 달리 규정되는 것이죠. 이제 암기력보다 중요한 건 필요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찾아내는 능력, 단편적 정보를 연결해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능력과 사고력 같은 것들입니다.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까요. 인간의 능력을 규정하는 데에 기술의 발달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중요하게 여겨지는 능력들 또한 그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때가 오겠지요. 관건은 지난한 노력의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기술이 현실화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일 텐데, 이와 관련하여 다들 비슷한 상상 한 번쯤은 해보셨을 겁니다. 신경 주사 한 방으로 원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기술 말이에요. 축구를 잘하고 싶으면 축구 연습을 하는 게 아니라 축구 주사를 맞고, 발표를 잘하고 싶을 때도 스피치 훈련 대신 발표력 주사를 맞으면 되는 거죠. 그런 기술이 존재하는 세계가 실제로 도래한다고 가정했을 때, 우수한 인간을 규정하는 지금의 기준 가운데 그때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요.


남세오의 『기억 삭제, 하시겠습니까?』는 바로 그런 기술이 상용화된 근미래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도시의 시민들은 귀 뒤에 '뉴럴 소켓'을 장착하고 있는데, 필요한 정보가 든 시냅스 칩을 이 소켓에 꽂으면 뇌로 곧장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칩은 사용자의 신체 기능을 초인적으로 증폭시켜주기도 하지요. 이 세계에선 고성능 뉴럴 소켓을 달 수 있는 경제권력이 그 인간의 가치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됩니다.


이야기는 고등학교 입학식 장면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여기서 곧바로 의미심장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주인공이자 이야기의 1인칭 서술자인 '유수현'은 입학식이 열리는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뜻밖의 인물을 보게 됩니다. 바로 뉴럴 소켓을 만드는 회사 '디바인'의 대표인 '서주미'와 그의 딸 '서혜나'입니다. 절대권력자의 딸이 자신과 같은 학교에 입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충격적인 일은 그다음에 벌어집니다. 웅성거리는 인파를 뚫고 걷던 서주미가 갑자기 자신을 경호하던 경호원의 뺨을 때린 겁니다. 하지만 수현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애초에 경호원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뉴럴 소켓과 시냅스 칩이 사람들의 인지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이 세계가 지닌 문제의 핵심은 뉴럴 소켓을 만드는 회사의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당연히 사람들의 일반적인 욕망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겠죠. 인간은 끊임없이 더 쉽고 간편한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 하고, 원치 않는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디바인은 그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기술적 수단을 쥐고 교묘하게 활용하지요. 이처럼 이야기는 권력자의 탐욕과 대중의 욕망을 알맞게 결합하여 매우 설득력 있는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작중에서 10년 전에 일어난 운석 충돌 사건은 그러한 세계관 성립에 한층 개연성 있는 맥락을 부여해 줍니다. 10년 전 인구 3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에 운석이 떨어졌을 때 도시 인구의 3분의 2는 사망했고, 디바인은 피해를 수습한다는 명목 아래 생존자 집단의 사고 관련 기억을 한꺼번에 삭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현 역시 부모에 대한 기억을 잃게 되지요. 상실의 슬픔을 느끼지 않는 대가로 소중한 가족에 대한 기억이 통째로 도려내어진 겁니다. 이 모든 일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졌고, 디바인에 의해 지금까지 철저히 기밀로 관리되어 왔습니다. 이로써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이 소수 권력집단에 의해 통제되는 디스토피아 SF의 정체성을 선명히 드러내지요.


이야기는 기만적 체제의 실상을 단계적으로 폭로하는 한편,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고 불편한 진실을 외면해 버리는 사람들의 무감각한 태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디스토피아를 사실적으로 묘사함에 있어 사회 구조와 개인의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는 것이죠.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평화롭고 평온하다. 그렇지 않은 모든 것이 보이지 않으니까. 눈이 보아도 뇌가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니까. 학교 다니는 내내 뉴럴 소켓을 통해 시냅스 칩에 담긴 잘 정돈된 세상만 보는 연습을 했다. 그래서 화려하고 깔끔하게 단장된 세상만 보고, 세상을 그토록 번쩍이게 닦아 내는 사람들의 손은 보지 못했다.

118쪽


SF 장르의 특징적 미덕을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야기는 분명 부정적 미래상을 기반으로 어둡게 흘러가고 있는데, 때때로 그 발상 안에 녹아있는 풍경은 놀랍도록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의 명암을 정확히 드러내거든요.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지금의 현실도 얼마든지 암울한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는 뜻이겠죠. 이를 통해 독자는 그간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일상 속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주인공 일행은 디스토피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혁명을 계획하고 실행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판도라'라는 작전명을 붙이지요. 알다시피 제우스가 내린 판도라의 상자에는 온갖 불행의 근원이 꼭꼭 담겨 있고, 열면 안 된다는 조건이 걸려 있었습니다. '열어보면 안 되는 신의 선물'이라는 역설적인 모티프는 이야기 속 디바인의 기만적인 행태와 닮아 있지요. 그것을 열었을 때 맨 밑바닥에 희망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 또한 이 작품의 지향하는 메시지와 절묘하게 만나게 되고요. 결국 우리는 삶의 온갖 불행을 또렷이 직시하는 그 시야의 범위 안에서만 비로소 제대로 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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