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 『네가 되어 줄게』, 문학동네, 2024
* 쪽수: 200쪽
조남주 작가의 신작 『네가 되어 줄게』는 1980년생 엄마 최수일과 2010년생 딸 강윤슬의 영혼이 뒤바뀐 일주일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바디 스위치 트릭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건 역시 누가 누구와 바뀌는가일 텐데, 2023년을 사는 한국의 어느 평범한 모녀가 이런 설정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영화 <체인지>(1997)에서 극도로 우스꽝스럽게 도식화된 두 고등학생이 주인공이었던 걸 떠올려보면 더 그렇습니다. 이제 캐릭터에 그런 연극적인 요소를 욱여넣지 않고도 충분히 몰입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모녀 관계에 대한 성찰이 의미 있게 이루어진 것이죠.
이 작품이 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모녀의 바디 스위치에 타임 슬립 설정이 절묘하게 더해졌다는 데에 있습니다. 엄마 최수일의 영혼이 딸 강윤슬의 몸에서 깨어나는 시점은 2023년 현재입니다. 반면 딸 강윤슬의 영혼이 엄마 최수일의 몸에서 깨어나는 시점은 1993년 과거죠. 그러니까 두 인물의 영혼이 서로의 몸에 바뀌어 들어가는 타이밍에 시점이 30년 간격을 두고 둘로 갈라지는 거예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2017)에서도 두 인물의 바디 스위치에 3년의 시차가 있었고, 이 시차는 거대한 재난의 초점을 주인공의 운명론적 서사에 동기화하는 장치로 쓰였지요. 그와 달리 『네가 되어 줄게』의 타임 슬립 설정은 일종의 페어플레이 룰입니다. 2023년의 강윤슬은 중학교 1학년인데, 그 상태에서 44살 최수일의 인생으로 곧장 들어가기는 아무래도 무리겠죠. 30년의 공백은 일주일 간의 스위치로 메워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자신과 같은 나이의 엄마가 된다면 얘기는 달라지죠. 그렇게 모녀는 같은 나이가 되어 서로의 성장 과정을 질적으로 비교해 보고, 그럼으로써 상대 인생의 무게를 객관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일주일치의 샘플을 확보하게 됩니다.
딸의 몸에 들어간 엄마는 생각보다 녹록지 않은 딸의 일상에 금세 녹초가 되고, 엄마의 몸에 들어간 딸은 그 시절의 일상화된 폭력에 놀라 기가 질립니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 두 겹의 설정이 갖는 매력도 한껏 두드러지지요. 엄마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풍족한 줄 알았던 딸의 '개인적 고충'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딸 입장에서는 몰랐던 엄마의 인생을 둘러싼 '시대적 맥락'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연히 엄마 쪽 서사에는 바디 스위치 장르의 개성이, 딸 쪽 서사에는 타임 슬립 장르의 개성이 각각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지요.
이는 20세기 압축성장의 시대를 지나며 갖은 부조리를 일상적으로 경험한 한국인의 공유된 기억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갖습니다. 알다시피 이건 조남주 작가가 가진 가장 강력한 강점이기도 하지요. 요컨대 지난 세기에는 다 함께 폭력에 둔감해지는 방향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위태롭게 유지해 왔다면, 지금은 그런 질서를 상당 부분 해체하는 대신 현상의 원인과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방식으로 사회가 진화해 온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이렇듯 살아온 환경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는 삶의 감각을, 특징이 뚜렷한 두 장르의 고른 밸런스로 연출해 낸 점이 제겐 이 작품의 가장 눈에 띄는 탁월함으로 여겨집니다.
모녀의 시점이 몇 번 교차되는 동안 이야기는 굵직하고 일관된 주제의식을 드러냅니다. 요컨대 우리는 곁눈질 몇 번으로 타인의 삶을 알 수 없습니다. 그 타인이 가장 가깝고 소중한 나의 가족이라고 해도 그렇죠. 결국 한 사람의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실제로 그가 되어보는 정도의 깊은 이입과 노력이 필요한데, 심지어 그러고 난 뒤에도 우리는 그를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나의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려는 모든 시도가 공허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죠. 어쩌면 이것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일의 시작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