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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Nov 11. 2017

약자의 도덕

페미니스트는 더 신중해야 한다

얼마 전 여성인권을 주제로 강연을 하던 강사가 강연 도중 이렇게 물었다.

"여기 계신 여성분들 집에 돌아가시면 곧장 향하는 곳이 어디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부엌으로 곧장 가지 않으세요? 보통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부엌으로 먼저 가시잖아요."

역시 대답은 없었지만, 몇몇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말이라는 반응이었다. 보통 집에 가면 먼저 씻지 않나. 결국 답답해하던 강사가 목소리 볼륨을 높여 이렇게 외쳤다.

"아이, 뭐야! 여성분들 살림 좀 하세요. 살림 좀!"


그제야 모두 소리 내어 웃었다. 긴장이 깨지면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찾아들었다. 모두가 그 안도감을 반기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그때 그 웃음의 의미는 뭐였을까. 강사의 센스 넘치는 농담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까. 아니면 여성인권의 중요성을 주제로 강연을 하겠다는 사람이 여성의 가사노동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데서 오는 허탈감의 표현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강사가 외치며 웃는 타이밍에 맞추어 다 같이 웃어주는 일종의 기계적인 리액션이었을까.


그날 그 강사는 강연을 마치고 호의로 가득한 박수를 받았다. 청중은 대체로 만족한 듯 보였다. 여성인권에 대해 평소보다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강사는 유능하고 재치 있는 달변가였다. 강사가 한 말은 대부분 유익했고, 깊이 고민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무엇보다 최근의 성평등 담론을 사례 위주로 충실히 반영한 점이 훌륭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강사가 여성인권을 주제로 청중 앞에 서기엔 역부족이었다고 느꼈다. 이유는 간단하다. 충분히 진지하지도, 신중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로서 신체/정신적 피해를 입고 살아가는 성소수자들과, 페미니즘 운동의 최일선에서 분투하는 사람들과, 수십 년 부부생활에서 남은 거라곤 박탈감뿐인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위에 나온 저런 농담을 직접 들었다면 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다 같이 소리 내어 웃는 그 사이에 끼어 맘 편히 함께 웃을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었을 거다. 그들은 남성 중심사회 기득권의 안일한 윤리 감정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소모품이 아니다. 그들의 요구는 여성인권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성을 비롯한 모든 성적,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가 당신들이 누리는 부당한 기득권에 의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단 한 사람의 인권이라도 다수의 웃음거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다. 그 강사는 이 명백한 외침을 외면하면서 그저 시혜적 차원의 배려로 섣불리 자기 위안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바로 그 만족감을 제공한 것뿐이다. 결국 그 강사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와 정반대로, 여성인권의 확립보다 남성 중심의 기득권 강화에 일조한 셈이 되었다. 세상은 때때로 이렇게 역설적이다.


다들 좋다고 하는데 혼자 너무 까다롭게 구는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유익한 시간을 보냈으니 된 거 아니냐고 하기엔, 저런 농담이 가능한 상황 자체가 너무나 기득권적이다. 정말로 처절하게 소외받은 여성들은 저런 말을 결코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사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에게, '효과'나 '결과'를 논하며 방해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사회의 기득권이었다. 그들은 항상 그렇게 말한다. 다들 괜찮다고 하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고.


결국 사회적으로 소외받은 약자의 입장에서 모종의 긍정적인 변화를 일구어 내는 일은 매우 길고 험난한 여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만큼, 약자의 도덕이 중요하다. 세상에 맞서 싸우려는 약자들(혹은 그들의 대변자들)은 언제나 그들이 속한 세상보다 도덕적이어야 하며, 오만한 기득권보다 진보적이어야 한다. 19세기 중엽의 미국 노예 해방론자들이 그랬고,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그랬으며, 2차 세계대전 후 인도의 신분제 폐지론자들 또한 그랬고, 최근 전 세계의 아동인권운동가, 동물 해방론자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성차별에 반대하는 모든 페미니스트도 예외일 수 없다. 다수의 조롱에 맞서는 소수는 언제나 도덕적으로 확고해야 하며, 진지하고 신중해야 한다. 페미니스트는 기득권자를 불편하게 만들 뿐, 웃겨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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