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은하, 『이웃집 빙허각』, 창비, 2024
* 쪽수: 196쪽
<사사주아 77회 - 이웃집 빙허각> 편에 객원 패널로 출연했어요. 작품 선정은 송수연 평론가님이 하셨고요. 작품에 대해 제가 코멘트한 부분 스크립트와 함께 올려봅니다.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는 조선 후기의 여성 실학자입니다. 19세기 초 『규합총서閨閤叢書』를 한글로 집필한 인물이지요. 빙허각을 풀어쓰면 '빈 누각에 기대다'라는 약간은 아리송한 문장이 되는데, 이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곽미경의 장편소설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자연경실, 2019)에는 그녀가 이런 이름을 자신의 당호로 짓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처음 읽어봤는데, 오늘 소개할 『이웃집 빙허각』과 함께 읽기 좋은 책이더라고요.
『이웃집 빙허각』의 초점은 일차적으로 빙허각이 아니라 소녀 덕주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빙허각은 말 그대로 이웃집 할머니고요. 여기서 빙허각의 역할은 덕주의 각성을 이끌어내고 더 넓은 세계로 인도하는 경험 많은 조력자입니다. 가상의 어린 주인공이 역사 속 거장을 만나 그의 정신과 가치관을 계승하는 이런 스토리는 『초정리 편지』(2006)나 『서찰을 전하는 아이』(2011)와 같은 작품들에서 익히 보아왔던 구도인데, 다만 이 작품은 역사 속 거장과 가상의 주인공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눈에 띄지요. 이전에 악습에 저항하는 조선 소녀의 분투를 다룬 동화 중에 제가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은 『담을 넘은 아이』(2019)인데, 거기엔 빙허각 같은 실존인물이 등장하지는 않거든요. 이게 참 쉽지가 않은 것이, 우리 역사에서 탁월한 여성의 기록을 가져오는 것 자체가 실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거든요. 그간 이 땅에서 여성에게 주로 요구되어 온 것은 일련의 사회적 미덕이지 개인의 눈부신 성취나 업적 같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옛 여성의 서사를 현대의 기준에 맞추어 새롭게 쓰려고 할 때, 작가들은 자료 수집 단계에서부터 난관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결국 빙허각과 같이 시대를 앞선 진보적 여성의 윤곽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려내는 데에는 남성 인물을 묘사할 때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품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이건 앞으로도 작가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겠죠. 전 그래서 이 작품 『이웃집 빙허각』이 더 반갑게 느껴졌어요.
어쨌거나 이런 이야기는 대개 주인공 개인의 성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세계의 진보를 암시하며 결말을 맺기 마련입니다. 그럴 수 있는 건 작가와 독자가 바로 그 진보한 미래에 이미 도착해 있기 때문이고요.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몇 발이라도 진보한 세계에 독자가 와 있을 수 있는 것은 덕주처럼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욕망한 지난 시대의 여성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이런 작품을 읽을 때 독자는 주인공에게 '당신이 품고 있던 갈증과 욕망과 동경이, 그 숱한 의심과 불안과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 앞에 도달했다. 당신이 우리를 이 세계로 이끈 장본인이다.'라고 거꾸로 말을 건네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죠.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걸 저는 이런 작품을 읽을 때 느낍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결말에서 주인공 개인의 성장과 세계의 진보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셈인데, 일반적으로는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하다고 여겨지겠지만, 제가 보기에 이 작품의 메시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요. 이 작품의 진가는, 덕주의 목소리가 다른 수많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럼으로써 독자의 역사의식을 확장시키는 데에서 결정적으로 빛을 발합니다.
우리 역사에는 과거 어느 한 지점에 분명히 존재했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여성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덕주의 서사 안에는 그 모든 여성들의 생의 의지, 다시 말해 모질고 거친 세상을 온몸으로 부딪쳐 살아내야만 했던 그 모든 여성들의 강렬한 의지에 보내는 존경심이 가득 들어있지요. 어떤 삶은 살아내는 것만으로 투쟁이 된다는데, 이 이야기는 평생을 그런 치열한 투쟁으로 보낸 여성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존경을 돌려주고 있는 겁니다.
흔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수고는 자주 보상의 기쁨으로 되돌아오고, 그렇기 때문에 참고 해낼 만한 가치가 있는 무엇이 됩니다. 하지만 덕주가 속한 세계에서 여성의 노동은 곧잘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며 수고로움에 걸맞은 보상과 인정이 따르지 않지요. 더욱이 심각한 건, 여성의 수고를 낮잡아보는 이 고루한 전통이 정작 여성의 노동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구조 위에서 뻔뻔스럽게 세를 불려 왔다는 겁니다. 결국 『이웃집 빙허각』은 한 세계를 지탱하는 논리가 얼마나 뻔뻔하게 불합리할 수 있는지를 과거에 실존했던 인물의 목소리를 빌려 일깨우고, 나아가 그런 일그러진 세계를 온몸으로 부딪쳐 살아낸 여성들에게 경의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이 작품에서 덕주의 성장, 세계의 필연적인 진보, 그 진보에 대한 믿음이나 신념보다도 더욱 중요한 건, 이토록 불친절한 세상을 한평생 살아낸 여성들에 대한 경의와 존경심입니다.
여성의 삶에 여분의 족쇄를 채우던 과거에 관한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페미니즘 텍스트가 됩니다. 구조적으로 같은 문제가 현재에도 버젓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여성의 일은 중요하지 않다, 여성은 언제나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 여성은 글공부를 할 필요 없고 바깥세상의 일을 알 필요도 없다는 말들이 학문과 철학의 권위를 빌려 공공연히 말해지던 시대의 기만성을 바로 그 시대를 살아낸 당사자 여성의 입으로 폭로하는 시도는, 누락된 역사의 이면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오늘날의 세계는 과연 그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운가를 묻게 하죠. 요컨대 여성의 역사는 어째서 가려지고 축소되고 왜곡되고 심지어는 지금도 그런 일들이 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끊임없이 되풀이되는가를 묻다 보면 우리는 반드시 페미니즘이라는 징검돌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역사학이기도 한 겁니다.
흔히 '불굴의 의지'라고 하면 일생일대의 업적을 남긴 영웅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데, 실은 시대가 인정하지 않고 고마워하지도 않는 고된 노동으로 평생을 채운 사람들의 의지야말로 불굴이라는 수식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만드는 힘이, 이 작품에는 있습니다.
끝으로 이 작품이 굉장히 입체적이면서 또한 섬세하다고 한 번 더 느낀 건, 빙허각이 한문을 귀히 여기고 한글을 깔보는 태도, 그리고 윤보와 덕주를 대하는 말과 행동에서 간간이 엿보이는 권위적 사고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전 빙허각의 이런 모습들이 이야기를 한층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해요. 동시대 규범의 억압적 성격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는 빙허각도 바로 그 인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면서, 독자인 우리 역시 지금 이 시대의 불합리를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우고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끝까지 감동적인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