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하다'를 실천하기 위해 재택근무를 하면서 항상 눈에 거슬렸던 책상 앞에 놓인 책장을 우선 정리하기로 했다.
책장에는 내가 꼭 보겠다고 생각만 하고 보지 않고 있는 책들과 사무용품들이 있다.
그리고 책장 꼭대기에는 다른 사람들이 내게 쓴 편지들과 여행지 등에서 모은 잡동사니들이 있다.
먼저 책장 꼭대기에 있는 상자 3개를 꺼냈다.
첫 번째 상자를 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가 있다.
옛 남자 친구의 편지와 군대 간 친구들이 보냈던 편지도 있다.
지금까지 직장 동료와 상사들에게 받은 편지와 카드들도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때와 6학년 때의 일기장 일부도 있다.
6학년 일기장 제일 마지막 장에는 선생님의 마지막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선생님의 글을 읽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어른 선생님의 말씀이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더 깊이 가슴에 박히는 것 같다.
결국 나는 여기에 있는 편지들과 일기장을 하나도 버릴 수 없었다.
튼튼한 플라스틱 박스를 사서 촘촘하게 넣어 공간을 절약하고 다시 책장 꼭대기에 올려두었다.
두 번째 상자를 열었다.
인화된 사진들이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찍은 빛바랜 스티커 사진이 있다.
대학교 때 해외 자원봉사에서 활동한 사진들이 있다.
추억이 떠오른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대학교 교정에서 찍은 사진들도 있었다.
사진을 하나씩 보다가 순간 놀랐다.
나 왜 이렇게 예쁜 거야.
나의 리즈시절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어본다.
예쁘다...
사진 한 장도, 필름 하나도 버릴 수가 없었다.
원래 있던 작은 종이 상자에 촘촘하게 넣어 아버지가 내가 어렸을 때 말하고 노래한 것을 녹음해 둔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고이 담아 책장 가장 아래애 넣어두었다.
세 번째 상자를 열었다.
이제는 살 수 없는 귀하고 값진 물건들이 있다.
6살 때 어린이날 선물로 받았던 둘리 캐릭터 지우개도 있고 초등학교 때 쓰던 색연필도 있다.
(색연필이 낡았을 뿐 지금 모습과 디자인은 같다.)
해외를 가서 사 온 열쇠고리와, 기념품들과 사진엽서도 있다.
사진엽서는 해외를 많이 나가시던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모은 것도 있었다.
2014소치동계올림픽 관련 업무를 하면서 받은 올림픽 기념품들도 많다.
일단 스크랩북에 있던 엽서를 모두 뽑아서 공간을 줄이고 책장에 꽂혀있던 우표수집책과 함께 새로운 박스에 넣었다.
낡은 문구 골동품들은 아쉽고 아깝지만 모두 버리기로 했다.
해외에서 모은 열쇠고리와 기념품들은 원래 사용하던 박스 중 작은 박스에 넣어두었다.
두 개 박스 모두 옷장 구석에 넣어두었다.
책장에 놓여 있던 네 번째 상자를 꺼내 열었다.
이 회사, 저 회사 옮겨 다니면서 받은 명함과 일부 회사의 사원증, 사원증은 없는 목걸이가 들어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된 이후 명함과 사원증은 나의 커리어를 추억하고 대변하는 증명서가 되었다.
안 좋은 기억이 있던 회사의 명함들은 버릴까 하다 그냥 남겨두기로 했다. 대신 반 정도를 덜어내어 버렸다.
너무 양이 많은 회사의 명함도 일부를 덜어내어 버렸다.
새 박스에 명함이 들은 플라스틱 케이스 그대로 차곡차곡 쌓아 넣어둔 후 책장 꼭대기에 올려두었다.
나는 물건을 잘 못 버리는 성격이다.
특히 좋은 추억이 담긴 물건은 더욱 그렇다.
심플하려고 정리를 했다.
겨우겨우 문구 골동품은 버렸지만, 나머지는 나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어서, 나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물건인 것처럼 느껴져서 버릴 수가 없었다.
부피는 줄었지만 결국 네 개의 상자는 다섯 개의 상자가 됐다.
첫 번째 상자에는 남들이 나를 보는,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제 그들에게는 없고 나에게는 있다.
두 번째 상자에는 내가 과거를 바라보는,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선명하고 예쁜 추억이 담겨 있다.
세 번째 상자에는 이제는 살 수도 할 수도 없는 한때의 집착이 들어있다.
네 번째 상자에는 남들은 모르는 나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하는 추억과 기억이 담겨있다.
다섯 번째 상자에는 나만 아는 나의 커리어 여정이 담겨있다.
이렇게 심플하다가 됐다.
이번의 심플하다는 과거 기록의 정리이자 추억의 보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