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매력은 무엇일까?
산을 여러 번 힘겹게 올라 보아도 사람들이 왜 산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정상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맑은 공기 때문일까.
마음을 정화시키는 역할 때문일까. 그건 산책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자 함일까.
가장 쉽고 빠르게 느낄 수 있다는 성취감 때문일까.
산에 오르고 나서 먹는 막걸리와 컵라면의 맛 때문일까.
코로나로 인한 요즘의 최선의 여행이기 때문일까.
운동과 다이어트 효과 때문일까.
산을 왜 오르는지 의문을 갖는 내게, 산을 좋아하는 지인이 장기하의 노래 '등산은 왜 할까'를 알려줬다.
등산은 도대체 왜 하는 걸까
뭐하러 힘들게 높이 오를까
어차피 내려올 걸 알면서도
뭐하러 그렇게 높이 오를까
초반의 가사가 내 궁금증을 대신한다. 하지만 노래는 뒤로 갈수록 애초에 당신과 같은 사랑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이 외로움이 더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원래 당신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사랑을 알지 못했다면, 이런 외로움도 없었을 거라는 이별과 자기 한탄의 내용으로 변질된다.
사람아, 왜 산을 오르는가.
어차피 올라갔다가 내려올 것을 알면서 말이다.
애초에 이렇게 멋진 광경이 있는 줄 알았다면 앞으로 더 멋진 광경을 찾을 때까지 다른 광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면서.
노래 가사처럼 산에 오르는 사람은 산을 알기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즐기는 걸까?
예전에 내가 알았던 자연과는 다른 새로운 자연을 만나기 때문인 걸까?
예전의 나와는 다른 새로운 나를 확인하고 싶기 때문인 걸까?
처음 번역 감수를 했던 단편 영화 <The Fullness of Time(Romance)>에서 남자는 스위스의 어느 눈 덮인 산으로 등산을 갔지만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현재의 모습 그대로 꽁꽁 얼어서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엉겁의 세월 속에 파묻혀버렸다. 그 남자를 떠나보낸 여자는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때도 궁금했다. 남자는 왜 목숨을 걸고 산에 가서 산에서 영원을, Fullness of Time을 함께 한 것일까.
요즘 나의 친구들은 등산에 푹 빠져있다.
나를 데리고 산을 가려고 많은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한라산으로 겨울산 등반을 가자고 했다.
나는 눈을 좋아하고, 그래서 평소 설산을 동경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멋진 산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알려주는, 인간을 숙연하게 만드는 거대한 산은 눈이 덮여있다.
그리고 설산이 아니더라도 한라산은 한 번쯤 가보고 싶었기에 동료들의 등산장비를 빌리고 또 많은 정보를 얻어 한라산으로 향했다.
우리는 관음사로 올라가서 성판악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새벽같이 나서서 어두운 평지를 조금 지나자 날이 밝아왔다.
잠시 후 계단이 나오더니 계속해서 가파른 산길이 이어졌다.
매주 산을 다니는 동료들과는 달리 나는 나만의 페이스가 필요했다.
양해를 구하고 동료들보다 앞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뽀드득. 뽀드득. 끝없는 눈길이었다.
계단도 돌도 눈이 모두 덮어서 오히려 올라가는 길이 편하게 느껴졌다.
가끔 저 멀리서 비쳐오는 햇살이 아름다웠다.
힘겹게 올라 삼각봉대피소에 다다랐다.
장관이었다. 삼각봉 그 자체가 절경이었다.
전망대에 앉아 맑은 하늘에 우뚝 솟아있는 삼각봉을 보며 동료들을 기다렸다.
CF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야호"라도 외쳐야 할 것 같았다.
잠시 후 지인들이 도착했다.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졌다.
우리는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서둘러 백록담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한라산은 산을 두 개 오르는 느낌이었다.
삼각봉대피소 이후로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산을 오르는 것 같았다.
분위기며 뷰도 이전과는 달랐다.
눈발이 날리는 산속을 걷고 있자니 동양화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체력은 점점 떨어졌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산은 더 가파르게 느껴졌다.
나는 아직 갈길이 먼데 이미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와 저기 좀 봐라!' 하며 탄성을 지르면 궁금해서라도 힘겹게 뒤를 돌아봐야 했다. 돌아보면 정말 절경이었다. 절경을 핑계로 한참을 서서 경치를 감상한다.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광경이 붓으로 그려놓은 것 같았다.
진짜 한라산을 경험했다고 하는 것은 두 번째 산을 오르고 나서부터인 것 같다.
절경에 감탄하며 한 발짝씩 눈 위의 무거운 발걸음을 떼기를 여러 번. 산을 가장 잘 타는 친구가 지금은 벌써 12시 10분이니 서둘러 정상으로 올라야 한다고 했다. 백록담에는 1시 30분까지 올라야 했다.
나는 많이 지쳐있었고 그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먼저 가라고 했다.
다시 혼자가 됐다.
눈발과 흐린 날씨 속에서 몇 발자국 앞만 보며 가파른 산을 한참 올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상을 향해 묵묵히 오르는 것뿐이었다.
나를 지나쳐 내려가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내 뒤로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열 발짝 발걸음을 떼고 열 발짝 발걸음 뗀 만큼 쉬고를 반복했다.
내려오는 사람들로 인해 길을 비켜주다 보니 움직임이 더 힘들었다.
갑자기 하늘 위해서 빛이 내려왔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다시 탄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와 저것 좀 봐봐!!"
뒤를 돌아봤다.
제주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위에도, 뒤에도, 옆에도...
나도 모르게 나는 장관에 둘러싸여 있었다.
하늘이 개고 따뜻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피부로 느끼며 희망을 갖고 열심히 걷는다.
그렇게 늦지는 않았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던 먼저 오르던 사람들이 저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반갑다.
더욱 힘을 내어 걷는다.
그럼에도 1시 30분까지 백록담에 도착해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 남은 것 같지 않다.
열심히 걷고는 있지만 멈추는 시간도 많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1시 30분까지 백록담에 가지 못하면 나는 이 힘든 와중에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이 길을 다시 되돌아가자니 왔던 길은 너무 험난했다. 가파른 산을 힘겹게 내려가야 한다.
그렇다고 속도를 내서 올라가자니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그렇다면 더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지 않는가. 정상 쪽으로 계속 향한다.
가파른 길이 아주 잠시나마 평평해졌다.
평평해진 길에 속도를 내면서도 옆으로 보이는 산 아래를 내려다봤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와아~"
나도 모르게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잠시 급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내 눈앞 정면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본다.
맑은 하늘도, 내가 올라온 길도, 저 아래 마을도 모두 내 앞에 넓게 펼쳐져 있다.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는 의무감과 제한된 시간의 압박도 잊고 시원한 감동을 느낀다.
나는 백록담까지 무사히 올라갔고, 친구들과 다시 재회했다.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과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는 활짝 열린 맑은 하늘 아래 백록담을 보며 즐거워했다.
정상에 올라야만 인증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인증했다.
정상을 오른 뒤 다시 평지를 걷고 있는 지금, 백록담을 본 것보다도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나 혼자 묵묵히 산을 오르다 울컥했던 그 감정이다.
이것 때문일까.
사람들은 언제 찾아올 줄 모르는 이 경이로운 경험 때문에 산에 오르는 것일까?
하지만 이 경험을 매번 등산할 때마다 겪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좋았던 기억, 이 좋았던 경험, 산속에서의 시원한 공기의 느낌.
가능한 좋은 기억으로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그래서 한라산을 또 갈 거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다른 산을 또 갈 거냐고 묻는다면 역시 그러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겨울의 한라산만큼 멋진 산은 아닐 것이기에.
한라산 등반을 마치고 숙소에 와서 유치원생 꼬마 조카와 영상통화를 했다.
"고모 오늘 한라산 갔다 왔어! 등산했어!"
조카는 말한다.
"고모, 제주도에서는 바닷가도 있고, 스누피 월드도 있고, 말도 탈 수 있는데, 왜 한라산을 올라간 거야?"
유튜버 땅끄를 동경하며 근육 만들기에 힘쓰고 있는 운동을 사랑하는 나의 조카도 평소의 나만큼이나 등산에는 별로 흥미가 없는 눈치다.
집에 와서 발에 난 상처들과 멍든 발톱을 보여주며 다시 조카에게 말한다.
"이것 봐~ 고모 한라산 올라갔다 와서 발 이렇게 다쳤어."
조카는 다시 말한다.
"고모, 그러니까 말이야~ 왜 발이 다치면서까지 한라산을 올라갔다 온 거야?"
그러게 말이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왜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지를.
어차피 내려올 줄 알면서. 내려온 세상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한 때의 감동은 그곳에 두고 온다는 것을 알면서.
사람아, 왜 산을 오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