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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dow Dec 08. 2023

글로벌 에티켓 없는 팀장과의 해외출장

팀장질 #1

"팀장질"이라고 나는 부르기로 했다.

팀장 역할에 심취해 사사건건 팀원의 업무에 간섭하고 지시를 하는 거다.

자기가 없으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염려하며 오버하는 행동을 하는 거다.




나와 일하는 것을 팀원들도 싫어하고 다른 팀 사람들도 싫어하니 혼자 일하라고 말한 팀장과 단둘이 해외 출장을 떠나게 됐다. 이번에야 말로 정말 혼자 일하고 싶었다.  


한때 통역도 했으나 지금은 영어를 안 쓴 지 5~6년이 되어 영어에 대한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내게  팀장은 "그럼 난 고등학교 때 미적분 되게 잘했어."라고 했다.


해외 출장지에서 팀장은 처음에 나의 영어 실력을 못 미더워하고 의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못 알아듣겠는데 나는 뭐라고 중얼거리니까 더 못 믿겠는지 "그렇게 말한 것 맞아?" 등의 확인 질문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그가 제대로 못 알아들은 것을 내가 제대로 정정해 준다든지, 아니면 그가 말한 것을 상대 외국인이 못 알아듣고 당황하는 표정을 보이며 내게 SOS 신호를 보내는 상황이 점점 늘어나자 그는 내게 점점 의존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 속에서 팀장은 어쩌면 나에 대한 미운 감정을 점점 덜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팀장의 되도 않는 행동들을 보며 팀장이 점점 더 꼴 보기 싫고 미워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이슈가 생겼나 보다. 발송하지 말아야 할 자료가 이메일로 누군가에게 발송되었나 보다.

"아, 팀장은 해외출장도 제대로 못 다니네. 출장 업무에는 집중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쇼핑몰 바닥에 주저앉고서는 노트북을 꺼냈다. 자기가 업무가 바빠서 그러니 나더러 근처의 식당으로 안내를 하란다.


업무면 업무지, 식당은 또 뭔가?


사실 이 출장의 취지도 그렇게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는 출장 기간 내내 업무 태만이었다.

사장님께 제출할 보고서를 써야 한다며 그는 해외 출장에 와서 해외 출장 목적에 맞지 않게 워케이션을 하고 있었다. 보고서 작성을 명목으로 주로 호텔방에 있었고 나는 나대로 혼자 계획된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었다. 출장 지시를 받고 출장 계획도, 미팅 일정도 나 혼자 연락하고 세팅했기 때문에, 팀장이 오지 않았다고 해서 미팅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아쉬울 것도 없는 출장이었다. 내가 업무가 태만한 지 감시하러 팀장이 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팀장은 첫날 미팅 동행 이후로는 호텔에만 있었다.  이슈가 생긴 시점에도 본인이 더위를 먹은 것 같으니 카페에서 기다리겠다며 나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가는 나를 따라와서 곁에서 내내 지켜보고는 미팅 결과에 만족하던 참이었다.


나는 식당을 정하고 앞장섰다.

팀장은 노트북을 들고 노트북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면서 나를 따라왔다.


우리는 대형 쇼핑몰에 있는 카페 겸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팀장은 자기가 업무를 처리해야 하니 아무거나 음식을 주문해 달라고 했다.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자 자신은 그런 것 고민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러더니 맥주도 주문해 달라고 한다.


주문한 식사와 맥주가 나왔다.

팀장은 음식을 한입 먹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서도 노트북 모니터 화면에서는 눈을 떼지 않았다. 때로는 욕을 지껄이며 때로는 국내 팀원에게 전화를 하며 상황을 파악하며 '이슈'라는 것을 처리했다. 모니터에서는 눈을 떼지 않은 채 남긴 내가 남긴 음식도 먹어가며 그 이슈를 처리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이슈'라는 것이 해결되기를 기다렸다. 그 이슈는 이미 엎질러진 물. 보내지 말아야 할 자료가 이미 발송되고 조회되어 이슈가 생긴 것이라면 사과 메일을 보내거나 회수 요청을 하면 될 일. 그것을 담당하고 있는 팀원이든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처리하면 될 일. 애써 담담한 척 방해되지 않으려는 척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지만, 노트북에 눈을 응시하며 욕을 중얼거리며 음식 한입, 맥주 한 모금 마시며 내 건너편에서 펼쳐지고 있는 팀장의 행동은 그야말로 꼴불견이었다. 그렇게 급한 일이면 밥 먹고 맥주마실 정신이 어디 있을까.  


이 에피소드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했더니 그 누군가가 말했다.

"팀장 역할에 취해 있는 것 같네."


이런 그의 행동을 나는 나는 팀장질이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해외 출장지에 오니 더욱 선명해졌다. 나를 미워하는 팀장을 이제는 나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다 보니 팀장은 더 이상 이런 업무를 처리해야 할 것 같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행여나 팀장을 하더라도 이 일이 아닌 다른 일을 맡아야 할 것 같았다.


복장.

나름 비즈니스 미팅인데 샌들에 티셔츠 입고 등장. 심지어 니플패치가 필요해 보였다. 웩.


미팅 불참.

물론 그가 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잘 못 알아듣기 때문에 내 일거리가 하나 더 느는 셈이어서 오히려 미팅에서 빠지는 게 좋았다. 그런데 불참할 거면 왜 온 거지.  


교통경찰에게 소리 지르기.

당시 방문한 국가는 국가 행사를 준비 중이었다. 인도를 막고 우회하라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경찰에게 그는 갑자기 차도 앞에 멈춰 서더니 우뚝 서서 경찰에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No Way!"


끼니 꼬박꼬박 챙겨 먹기. 때로는 더럽게.

그렇게 바쁘다면서 끼니는 참으로 잘 챙겨 먹는다. 그와 나눈 대화 대부분은 아침 뭐 먹을지, 점심과 저녁은 어떻게 할지다.  고급 레스토랑의 무료입장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는 모습이 참 가벼워 보였다. 또 하루는 고급 레스토랑에 갔는데 재채기를 하고 온갖 음식물 파편을 내 얼굴에 다 튀겨대서 너무 역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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