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나 - 아기 조카와 노처녀 고모

하숙생보다 못한 하숙살이

by shadow

나보다 한 살 어린 남동생은 귀한 아들이었다. 훈훈한 외모에 공부까지 잘하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간섭을 싫어하고 자기중심적 성격이 강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했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고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능력자였다. 그래서 부모님은 동생에게 간섭을 하지 않되, 동생이 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그런 동생이 이번엔 알아서 인생의 동반자를 찾았고, 어느 날 본인 마음대로 결혼 날짜를 정해 가족에게 통보했다. 동생은 곧 정년퇴임인데 자식들이 결혼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드리는 효도를 했다.


결혼하고 나서는 한 가장으로서의 독립을 존중해달라며 와이프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갔다. 동생을 아끼는 부모님은 동생의 독립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해 줬다. 그러나 동생은 재정적 지원을 받은 집에 부모님이 찾아가는 것을 반기지 않았고, 명절 때만 와이프와 함께 우리 집에 왔다가 갔다.


몇 년 후 남동생은 부모님이 바라시던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안겨드렸다. 또다시 효도를 했다.


동생은 손자를 예뻐하고 너무나도 잘 돌보는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자주 손자를 보러 동생 집을 찾아오는 부모님의 방문을 반겼다. 비밀번호도 공유됐다. 부모님은 동생의 열린 행동에 기뻐했다.


올케의 출산휴가가 끝나갔다. 올케가 일을 하는 동안 100일도 안 된 손자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조카는 태어난 지 100일도 되지 않아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여, 우리 집 안방에서 나의 엄마와 함께 살게 됐다. 안방을 쓰던 아버지는 원래 동생이 쓰던 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손자를 우리 집에 데려와서 키우는 것에 대해 내 의견은 전혀 묻지 않았다. 따라서 내 의사도 반영되지 않았다.




조카는 예뻤다. 내 동생을 똑 닮았다. 귀여웠다. 나를 보며 방글방글 웃어주는 것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집안 분위기도 바뀌었다. 맨날 다투던 부모님도 이젠 싸울 겨를이 없었고 조카의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에 행복해했다.



하지만 조카는 내 일상을 모두 뺏어갔다. 거실은 조카의 장난감들로 가득 찼고, 조카의 놀이터가 됐다. 세계 각지에서 모은 소중한 기념품들도 한순간에 조카의 장난감이 됐다. 내가 방에 있어도 아기 조카의 울음소리로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게 됐다. 거실에서 TV를 보다가도 조카가 자야 할 시간이면 불을 모두 끄고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방에 들어가서도 방 안의 불을 끄고 조카가 잠들 때까지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조카가 잠들 때까지 컴컴한 곳에서 옆에 같이 누워있어야 했다. 화장실도 못 갔다.


내가 조카와 보내는 시간이 남동생 부부가 조카와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았다. 남동생 부부는 퇴근 후 잠깐 와서 조카와 시간을 보내다 다시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 주말에는 조카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고 우리 집에 와서 금요일과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 밤이 되면 다시 자기들 집으로 갔다. 심지어 부부는 아이를 맡기고 저 멀리 몰디브로 여행도 다녀왔다. 그래서 나는 항상 집에 있을 때는 아기 조카와 함께였다.


나의 부모는 점점 육아 스트레스가 쌓여갔지만 아들 부부에게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아들 부부가 없을 때 내게 푸념을 늘어놨다. 엄마는 시장을 다녀오겠다며 조카를 내게 맡기고 몇 시간을 들어오지 않았다. 또 어린 조카를 데리고 어디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며 사람들을 집에 들이기 시작했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결혼을 해서 애를 낳고, 아직 장가를 안 간 동생이 있는 우리 부모님 집에 내 자식을 맡기겠다고 했으면, 부모님은 우선 내 동생 눈치를 봤을 것이다. 그리고는 내게 남동생이 집에 있으니 부모님께서 자주 우리 집에 와서 애를 보겠다고 했을 수 있다. 혹은, 동생에게 의견을 물었을 것이고 동생은 펄쩍 뛰며 절대로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어떻게 부모가 되어 자식을 두고 집에 갈 수가 있냐며 화를 냈을 것이다. 혹시나 운이 좋아 부모님 집에 내 자식을 맡겼다면 동생은 내 자식을 거들떠도 안 봤을 것이다.


나의 부모는 아들과, 아들의 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기에 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가 집을 나가 독립을 하겠다고 하거나 지금의 상황에 대해 짜증을 내면 이제 곧 마흔인 애가 애처럼 왜 그러냐고 했다.


나의 불만은 쌓이고 쌓였다. 꽤 오랜 기간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았다. 기회가 있으면 여행을 가거나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조카가 예뻤지만 밉기도 했다.


이런 우울했고 짜증 났던 생활은 전혀 변화가 될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2년 뒤 둘째 조카가 생기고 동생이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오며 끝이 났다. 나의 부모는 동생이 집 근처로 이사 오는 것을 결정했을 때도 매우 반기면서 집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계약을 추진했다. 둘째도 집수리를 하고 환경호르몬이 없어질 오랜 기간을 우리 집에서 지냈다. 물론 내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굉장히 많이 숨통이 트였다. 나의 부모는 이제 남동생 집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어 나는 우리 집에 거의 혼자 있다. 며느리가 혼자서 아이 둘을 봐도 될 정도로 조카들이 많이 컸지만, 아들이나 며느리가 혼자 있다고 하면 굳이 가서 봐주거나 집에 데려와서 돌봐주거나 한다. 가끔 우리 집에 데려올 때 여전히 나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이런 나의 상황과 관계없이 조카를 데려와서 방치하고 있다. 아들 집은 비어있는데 말이다.


이해한다. 이 집은 부모님의 집이니까. 나는 그때 집을 사서 독립을 했으면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었을 텐데, 하며 후회하고 있다.


모든 부모는 자식을 똑같이 사랑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부모의 사랑은 차등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살아오며 부모의 수많은 무의식적 행동에서 나보다 동생을 더 많이 생각하는 마음을 봤고, 이에 상처 받았으며, 지금은 무뎌졌지만, 가끔 보이는 부모의 무의식적 행동에 또 상처 받는다.


내 자식이 아닌 조카이지만 2년간 첫째 조카와의 동거를 통해 나도 부모의 마음을 체험했다. 첫째 조카가 집순이인 나의 모든 생활을 뺏어갔지만, 조카는 내가 앞으로도 겪지 못할 자식에 대한 사랑이란 감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 줬다.


또 조카를 통해 부모의 차등적 사랑의 실체를 확인했다. 나도 두 조카를 모두 사랑하지만 언제나 첫째 조카에게 더 관심이 간다. 둘째 조카가 이런 내게 상처 받으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