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차장은 경찰이 참 별로였다. 학생 때 소매치기당한 것을 신고했을 때의 일 때문이다.
과외 아르바이트비를 받은 금차장은 그날 가방 안에 상당한 수표와 현금을 들고 있었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 후 계산하려고 가방을 열어보니 지갑이 통째로 사라졌다. 급히 백화점 CCTV를 통해 소매치기가 금차장 가방에서 지갑을 빼내가는 화면을 확보했다. 증거를 확보했기에 114에 전화했다. 경찰은 말했다.
"여기 그런 거 신고하는데 아니에요."
아니, 그럼 뭘 어디에 신고하라는 거지?
이날 이후 금차장은 경찰이 국민의 지팡이라는 인식을 버렸다.
금차장의 A사 퇴사 직전 프로젝트는 참으로 꿀이었다. 매일 야근하며 몇 년을 퇴사만을 꿈꾸던 금차장은 고객사 사무실에 앉아 지루해하는 시간을 처음 가져봤다. 클라이언트로 모시던 공무원들도 좋았다. 특히 검사 고객과 경찰 고객과 사이가 좋아졌다. 가까이서 그들과 일하면서 합리적인 일 처리 방식과 사람에 대한 배려를 몸소 체험하며 제법 신뢰가 쌓였다.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라면 이제는 다시 금차장의 소매치기 사건 처리를 맡겨도 될 것 같았다.
꿀 프로젝트가 종료될 때쯤 금차장은 이직을 했다. 그러나 이직한 직장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직을 했다. 이 회사도 저 회사도 맞지 않는 것 같고 앞으로 뭘 해야 하나 고민할 때쯤, 금차장에게 다시 A사의 꿀 프로젝트에서 프리랜서로 일해보자는 제안이 왔다.
다시 돌아가니 역시 꿀이었다. 한동안 몸도 마음도 편했다. 프리랜서라 돈도 많이 벌었다.
프로젝트 위치가 지방으로 바뀌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클라이언트들도 조금씩 교체가 됐다. 안정적인 프로젝트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경찰에서 파견된 이경정도 이때 왔다.
금차장은 이경정을 개경정으로 부른다. 기존 경찰 고객들이 잘 쌓아둔 좋은 이미지 때문에 처음에 금차장은 개경정 업무 요청에도 성심성의껏 도왔다. 문서를 봐달라고 하면 문서를 봐주고, 영어로 작성해달라고 하면 영어로 작성해 주고, 장표를 작성해달라고 하면 장표를 작성해줬다.
개경정이 금차장에게 주는 업무는 MOU 문서 검토, 영문 브로셔 작성, 해외출장 준비, 중요 회의 PPT자료 작성... 딱 이 수준이었다. 공무원들끼리 해도 되는 업무인데 개경정은 유난히 A사 업체 직원으로 들어온 금차장 도움을 많이 받으려 했다. 그리 버거운 양의 업무는 아니지만, 금차장은 개경정 외에 많은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A사와 관련한 업무를 수행해야 해서 바빴다. 그런데 개경정은 이들과 경쟁이라도 하듯, 금차장을 업무적으로 독점하려고 들었으며, 개인 카톡이나 개인 메일을 통해 수시로 업무지시와 업무 확인을 했다.
"고맙습니다. 근데 카톡은 안 하시나 봐요? 메일은 제가 바로바로 확인을 안 할 때가 있어서요."
금차장은 카톡으로 알겠다고 했다. 개경정은 이때부터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카톡으로 수시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카톡뿐 아니라 전화가 더해져서 더더욱 연락이 많았다.
"잠시 영어 질문을 좀 드리려고요. 4층에서 커피 한잔?"
"옥상에서 볼까요?"
"안내동에서 볼까요?
금차장을 괴롭히는 듯, 안 괴롭히는 듯, 애매한 개경정의 행동들에 대해 금차장은 다음과 같이 개경정의 주요 특징을 정의해봤다.
급하지 않은 업무를 매우 급하다며 요청하고 며칠 혹은 몇 주에 걸쳐 여러 번의 만남을 가지고 수정을 함
회의를 하자고 할 때에는 4층 휴게실, 옥상, 카페가 있는 다른 건물에서 만나자고 함. 하지만 막상 회의를 가면 중요한 회의 내용도 아님
영어 부탁을 지속적으로 함. 업무 핑계인 것 같지만 그냥 개인 부탁 같음
MOU 관련 업무를 했었냐고 해서 잠깐 했다고 했더니 그것을 빌미로 심할 정도로 계속 검토 요청을 함
맞춤법이 많이 틀림
업무 시간에는 일이 바쁜지 업무 외 시간에 연락을 많이 함
카톡이나 문자메시지로 대화하는 것을 선호함. 또 경찰 메일이나, 정부 메일인 korea.kr메일은 절대로 쓰지 않고 네이버 메일만 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