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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dow Aug 19. 2020

회사에서 집에만 있으라고 한다

집순이의 재택근무 적응기

2020년의 봄. 회사에서 코로나 발병자가 나왔다고 하면 그 불명예는 향후 3년 간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악 취급을 받는 분위기였다. 회사는 반강제적으로 재택근무를 장려하기 시작했고, 나는 회사 정책에 따라 강제적으로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처음엔 재택근무가 싫었다.

난 노예근성이 있어 주변 사람 눈치 보면서 일해야 집중도가 높았다. 집은 오롯이 나를 위해 쉬는 공간이지 남을 위해 일하는 공간도, 또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하는 공간도 아니어야 했다.


출근은 안 해도 매일 씻고 준비해야 다. 세수도 안 한 부스스한 상태에서 갑자기 화상회의를 하자고 하면 난감하니까 말이다. 화상 회의 시에는 우리 집, 나만의 공간을 보여주기 싫어 노트북에 붙어있는 카메라를 잘 조절해야 했다. 해상도가 낮아 나도 내 집도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다행이었다.


의사소통이 힘들었다. 방에서 화면을 보며 휴대폰으로 3시간이 넘게 상대방과 언쟁을 벌이는 상황이 반복되면 두 배로 더 지치는 느낌이었다.


가족들도 도와주지 않았다. 가끔 엄마는 화상 회의를 할 때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고, 때로는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조카들이 거실에서 시끄럽게 놀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방 한구석에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시간이 지나  힐링을 체험했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니 슬슬 노예근성 발동하며 나태해지는 면도 있었다. 자유롭게 일을 하면서 책을 본다든지, 업무와 크게 연관 없는 인터넷 검색을 했다. 시간 절약도 됐다. 일어나자마자 출근이니 잠을 더 잤다. 1시간이 넘게 걸리는 퇴근시간에는 TV를 보며 홈트 하는 재미도 붙였다. 평소엔 잠을 더 자느라, 출근시간에 쫓기느라 하지 못했던 아침 먹는 습관도 생겼다. 점심을 먹으며 뉴스봤다. 불필요한 회의에 참여해서 회의록을 쓰거나, 상사가 화내는 것을 지켜보지 않아도 되니 정신적 힐링도 되었다.  


그래도 마음속 조바심과 불안감은 커졌다.

팀장은 아침엔 내가 뭘 할 건지, 저녁엔 내가 뭘 했는지 적어서 올려두라고 했다. 감시당하는 느낌이었다. 사내 채팅 프로그램으로 누군가 말을 걸어왔을 때 답을 바로 하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회사 사람에게 전화가 왔는데 못 받을까 봐 화장실 가기도 불안했다.


다시 회사에 가고 싶어 졌다. 

출근이라도 하면 바람이라도 쐴 수 있는데, 집 안에서 컴퓨터 화면바라보고 있는 반복되는 패턴에 답답해졌다. 이제는 다시 회사를 가고 싶어 졌다. 회사를 가도 되느냐고 물으면 팀장은 상사 눈치를 보며 계속 집에 있으라고 했다.

 

그 와중에 회사에서는 코로나를 대응하여 사업거리를 발굴하라고 했다. 주로 비접촉(Untact)과 관련한 것으로 뻔한 아이디어들이었다. 이를 모아서 , 회사는 이번에는 A관점에서, 다음번에는 B관점에서 검토하라며 계속 숙제를 줬다. 회의실에 모여 함께 검토하고 싶었다.


회사에 다시 게 됐지만....

코로나 확진자수가 잠잠해지고, 재택근무가 해제됐다. 예방 차원에서 2미터 간격으로 앉으라고 하는데 그러기엔 사람이 너무 다. 심지어 칸막이도 없다. 회사는 올초 공용 오피스 모델을 벤치마킹하여 모든 책상의 벽을 치우고 흡사 대학 도서관 같은 개방형 구조를 만들어놨다.


재택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사람 냄새, 땀 냄새를 풍기며 열일하고 있다. 나는 콩나물시루 같은 사무실에서 콩나물처럼 생긴 옆 사람의 담배 냄새에 질식할 것만 같다. 마스크를 고쳐써도 소용없다.


회사 카페에는 커피 한잔 마시려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줄지어 서있다. 엘리베이터는 언제나 만차다. 그 와중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좁은 공간에서 웃고 떠드느라 정신없다. 


변화된 것이라면 열화상 카메라와 구내식당 내 칸막이 설치 정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당 밥은 맛없다며 우후죽순 몰려나가 에서 사 먹는다.  


또 재택근무하라고?

늦여름. 확진자가 다시 늘고 있다.  다시 강제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이번엔 오히려 반가웠다. 회사를 너무 가기 싫었던 요즘이었다. 휴일 밤에 가서 노트북을 챙겨가지고 집에 왔다.


재택근무  시간 만에 생각을 바꿨다. 시원한 에어컨 나오는 회사가 벌써 그립다. 너무 더워 거실에 나왔더니 조카들이 놀아달라고 뛰어온다. 방 한구석에서 혼자 고립되기엔 방이 너무 덥다.


기회를 살피다 다시 회사에 갔다. 집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편하다. 출근  시간 만에 메시지가 왔다. 회사에 확진자가 발생했고 곧 건물을 방역할 거라고 한다.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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