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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dow Feb 07. 2022

그냥 있어도 불안하고 나가도 불안한 나이

라떼는 말이야~

네이버 블로그에서 한 청년의 면접 후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면접 준비는 어떻게 했는지, 면접 때는 어땠는지를 아주 솔직하게, 그리고 재밌게 담았다.

그 글 자체가 요즘 청년 취업 고군분투기다.


청년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혹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기회를 기다리고, 공부하고 준비하고 있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인턴 자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아직도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그를 응원한다. 어서 인생 1막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고 새롭게 2막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이렇게나 열심히에다가 간절한데... 요즘은 취업이 훨씬 힘들구나 싶다.

우리 때에 비하면 정말 요즘 취업은 훨씬 힘든가 봐요.


'라떼'도 많이 들었던 말이다. 나도 모르게 그 청년의 취업 고군분투기에, 그리고 직장생활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건 '라떼'와 비슷한 내 이야기이기 때문인 것 같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공백기를 가졌던 약 4개월을 제외하고는 (어떻게 보면 이로 인해 2년의 공백이 생기긴 했지만) 나는 대학교 4학년 2학기부터 계속해서 취업 준비를 하던 취준생이었다. 취업 준비를 하다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맞는 직장을 다니게 됐고, 그만뒀고, 내 꿈에 더 가까울 것 같은 커리어를 쌓기 위해 대학원을 갔고, 또 취업을 잘하기 위해 인턴 활동을 했으며,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원서를 냈다. 기회가 있음에도 무언가 더 나은 손에 잡힐 듯한 기회 때문에 지금의 것을 포기했고,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고 자꾸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희망을 갖고 준비하던 사람이 나였다.  


대학원 때는 영어로만 하는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강의를 하던 교수가 국내의 한 국제협릭기관에서 인턴 업무를 수행할 학생들을 찾고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자기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그 교수를 찾아가 나도 인턴을 하고 싶다고 했다. 교수는 영어로 내가 영어가 'fluent'하지 않으니 추천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영어 때문에 인턴직에 지원도 할 수 없다니 서러움이 몰려왔다.


더 서글펐던 것은 그 교수는 미국 명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아 왔지만 영어 수업을 너무 못해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원어민 학생들의 원성이 가득했다는 점이다. 그런 교수가 내게 가르친 것은 내가 영어를 못해서 인턴 자리 하나 추천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가장 먼저 취업된 곳이 이 기관의 상위 기관이었다. 이 기관과 협업을 하거나 더 상위 수준의, 보다 더 재밌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계약이 끝나면 이 기관의 정규직으로 계속 일할 수도 있었다. 


이걸 보면 알 수 있다. 청년이여, 자신을 믿어라. 좁은 세상이 아직 당신을 못 알아주는 것뿐이다. 당신의 가치는 더 넓은 곳에서 알아줄 것이다.  

 

취업을 하고 업무를 즐겁게 한 것은 맞다. 하지만 해당 업무는 한시적이었고 영원할 수 없었다. 내 눈은 높아져서 계약 기간을 마치고 영어를 못 해서 인턴으로도 갈 수 없었던 그 기관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일을 하면서도 구직활동을 위한 자기계발에 손을 놓으면 안 되었다. 이런 불안함이, 그리고 불안한 습관이 계속 이어져 대기업을 다니면서도, 공공기관을 다니면서도, 나는 여전히 취업준비생으로 남아있었다. 언제든 나가서 신입으로서 일할 준비를 했다. 


돌이켜보면 오히려 업무가 한시적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기한이 있기에 현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고, 내가 스스로 나간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해당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직장을 '체험'하며 내게 맞는지 살펴보고 업무나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돈독하게 쌓아갔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계약직이든 정규직이든 내게 포지션은 상관없었다. 모든 업무를 당장이라도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계약직처럼 임했다. 그래서 직장을 여러 번 옮겼고, 직장에 대한 소속감은 없었지만, 경험과 사람은 많이 생겼다. 지금의 직장에서는 이렇게 여기저기 옮겨다닌 나를 좋게 보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스스로 나의 커리어를 위한 훌륭한 가치를 쌓아왔다고 자부한다.





항상 이직을 할 마음으로, 취준생의 마음으로 직장을 다니던 내가 아무런 취업준비를 안 하게 된 것은 지금의 회사를 다니게 되고나서부터 인 것 같다. 회사에 대한 불만은 여전하지만 슬프게도 지금의 내 나이는 오늘에라도 당장 나가서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엔 애매해졌다. 신입으로 다시 시작하기도 어렵고, 새로운 직장에서 나를 계약직으로도 받아주기엔 부담스러운 나이, 그렇다고 임원으로 데려가기엔 열정이 부족하고 경험이 부족해 보이는 그런 커리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의 내가 가장 바라지 않는 것은 회사에서 일 못한다고 쫓겨나서 다시 취준생이 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취업을 한 이후의 직장을 다닐지 말지의 선택권은 내가 쥐고 싶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수록 예전에 비해 당당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인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건전한 자신감과 불건전한 교만을 가르는 벽은 아주 얇다. 젊었을 때라면 확실히 ‘적당히 해도’어떻게든 마라톤 풀 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혹사시키는 연습을 하지 않아도 이제까지 쌓아왔던 체력의 축적 만으로도 무난한 기록을 올릴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지불해야 할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밖에는 손에 넣을 수 없는 나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내 나이를 인지해야 한다.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나는 그냥 있어도 불안하고 나가도 불안한 나이가 되었다. 대가만큼의 상응하는 것만 손에 넣을 수밖에 없는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니 청년이여, 지금의 현실에 속상해하지 마라. 그냥 있어도 불안하고 나가도 불안한 나이가 올 때까지 무얼 하든 빛이 날지니. 그 빛을 잘 발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 빛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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