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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dow Jan 15. 2022

승진하려는 상사여, 그 속내를 보이지 마라

승진이 뭐길래

연초가 됐다. 사장이 팀장을 불러 말했다.

"내가 당신을 올해 승진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소. 그러니 멋진 성과를 기대해보겠소."


팀장은 드디어 때가 왔다며 좋아했다. 팀장이 처음에 팀장이 되었을 땐 창창한 앞날이 펼쳐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5년째도 팀장, 7년째도 팀장, 만년 팀장을 하고 있으니 마음은 점점 갑갑해졌다. 외부에서 젊은 인재들을 영입하여 자신의 상사로 앉히는데 오랫동안 회사에 성실하게 봉사한 자신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었다. 이제 마지막 기회다. 곧 임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팀장은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처음엔 속내를 숨겼다. 하지만 매월 조직 인사가 나고 외부에서 임원을 데려오거나 내부에서 승진을 하는 사람이 계속해서 생기자 팀장은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팀장의 조바심은 고스란히 팀원들에게 전해졌다.   


팀장은 일단 승진을 위해 팀의 규모를 키워야 했다. 팀의 규모를 크게 보이기 하기 위해 팀에 '아무나' 데려왔다. 업무에 따른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규모만 키운 탓에 재밌는 업무도 재미없는 업무가 되었고, 어떤 팀원은 할 일이 없어 매일 모니터만 보고 놀고 있는데, 어떤 팀원은 일이 너무 많아 번아웃이 왔다. 자신의 승진 목표에 대해 눈치가 없을 것 같은 경력사원을 채용하면 그 사원을 앉혀놓고 "내가 내년에 승진해야 하니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전년도 임원 승진자들을 찾아다니며 노하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는 그 노하우를 업무와 상관없는데도 굳이 본인 스스로에게 적용해가며 팀 내 비효율을 양산했다.  


팀 업무를 회사가 아닌 사장 요구사항에 맞췄다. 사장이 지시한 사항에 대해서는 단어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고 꼭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도 사장에게 가서 대면보고를 했다. 다른 팀과 협업을 해야 하는데 협업이 어려우면 "사장님 지시사항이니 잘 따르라"며 독려했다. 회사 임원을 포함한 의사결정자들에게 수시로 메일을 보내 자신의 성과를 알리려고 노력했다.


팀장의 플래너에는 스케줄이 한가득이지만 실제 팀장이 하는 일이라곤 회사 임원들을 찾아다니며 추가적인 업무를 발굴을 하고 이를 팀원에게 내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받아와서 내린 일이 너무 많아져서 팀장은 자신이 팀원들에게 지시한 업무에 대한 진척사항 파악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공식석상에서도 말은 하고 있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그러자 더욱 사장이 관심 있어하는 과제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도 내년도에 본인이 갈지도 모르게 될 유력한 임원 자리가 보이면 그 기반을 닦기 위해 팀원들 보내 업무를 하게 했다. 당연히 그 일은 팀 업무와는 큰 연관이 있지 않았다. 어느 정도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자리의 기초를 열심히 갈고닦아서 스스로가 적임자임을 알리는데 지대한 공을 들였다. 팀원들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질되어 가는 팀장의 욕심에 점점 일에 대한 의욕을 잃어갔다.  


결국 팀의 업무는 특색이 없어졌고, 팀원들의 불만은 높아져갔다. 저럴 거면 빨리 승진이라도 하지 싶은데 매월 발표되는 승진자 명단에서 팀장의 이름은 누락되어 있었다.


팀장은 결국 연말에 성과가 좋지 않은 임원의 자리를 대체하며 승진하게 됐다.

팀장은 일 년 내내 고군분투하여 원하는 개인의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역으로 팀장은 팀원들의 신뢰를 잃었다. 리더로서의 역량을 보이며 업무와 성과로 퍼포먼스를 내어 승진한 일부 다른 임원들과는 달리 팀장이 한 일은 오로지 본인 승진을 위한 생색내기였다. 팀원 평가에는 개인의 실력과 성과를 떠나 자신의 바로 위 평가자가 좋아하는 업무를 담당한 사람들에게만 점수를 후하게 줬다.


일부 팀장을 이해하려는 사람도 있다. 이미 팀장은 여러 번 임원 승진에서 누락했고, 본인 스스로가 판단하기에 자신의 업무 성과를 그동안 사장님에게 덜 알렸다고 생각하기에, 이번에는 저렇게 처절하게 한 것일 거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은 자리에 대한 기쁨은 과연 얼마나 갈까. 그렇게 해서 달게 된 임원 자리는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을까. 또 그 임원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직원을 희생하며 업무와 크게 관련 없는 비효율적인 보고와 생색내기를 지속할까.


웃프다. 성과와 관련 없이 사내 정치와 윗사람에게 자신의 충성도를 알리는데 집중하는 것이 성과로 인정되는 이런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현실도 웃프고, 이렇게 희망 없는 곳에서 또 몇 년을 지내야 한다는 것도 웃프다.


혹시 올해 또 승진을 꿈꾸는 팀장이 있다면 듣지는 않겠지만 말해주고 싶다. 승진하려는 상사여, 그 속내를 보이지 마라. 자리는 얻을지언정 품격과 사람은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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