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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dow Dec 17. 2021

B급 인생

간직하긴 뭣하고 버리기엔 아까운

주제 파악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스스로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성적에 있어서는 특히 그랬고, 업무를 할 때의 진행 상황도 그랬고, 사람들 무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관점도, 전반적 상황 파악을 하는 것도 나름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결과론적으로 대부분 그랬다.


하지만 항상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 있으니 그건 조직에서의 평가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동료들에게는 "네가 최고다"라는 소리를 들어도 항상 B다.

이번에는 A일까?

B다.

올해는 A일까?

또 B다.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지 않는 나이기에 치열하지 않았을 때의, 열심히 하지 않았을 때의 B에는 만족한다. 적당히만 하자는 나의 태도가 B로 평가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나는 꾀를 부리지 않고, 시키는 것을, 지금 당장 나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주도적으로, 없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잘했다. 자존심을 걸고 열심히 했다. 그러면 연말이 되면 내심 A를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B/B/B다.

승진한 전년도 팀장은 말했다.

"있지, 나는 너 A 줬는데 인사팀에서 B로 깎았어. 그래서 대신 인센티브 주기로 했어"

나의 B급 아웃풋들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며 내가 지치도록 쭉쭉 아웃풋을 뽑아낸 이번 팀장은 자신의 승진 결과 발표 후 내게 오지랖을 떨며 말했다.  

"A 줬다."

왜 저런 쓸데없는 말을 하나 싶었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는데 평가 결과를 오픈하니 또 B다. B급 그렇게 좋아하더니 나를 아주 그냥 B급으로 봤다.

묻지도 않으련다. 보나 마나 똑같이 말하겠지. 인사팀에서 깎았다고.  


이쯤에서 드는 의문이 여러 개 있다.


인사팀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계속 내 점수를 깎는 걸까.

내가 아는 인사팀 사람들은 한결같이 다 업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나의 태도가 안 좋아서 그런가? 태도 레퍼런스로 사람을 평가하나?


팀장은 왜 자신의 본래 결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수긍하는 걸까.

상대평가이기에 누군가는 A가 A가 되었을 터. 나는 그 사람으로 인해 A가 B가 됐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내가 그 사람보다 못한 건 뭘까.

팀장을 원망하며 상대 비교를 한다.

생각해봤자 나올 답이 아니다.


평가 점수를 깎는 대신 인센티브로 보상할 거면 평가제도는 왜 적용하는 걸까.

평가를 제대로 주지 못해 인센티브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평가제도가 잘못되었음을 보여준다.

우연히 보게 된 회사 사람들의 5개년 평가 결과도 평가는 성과와 크게 상관없음을 보여줬다. 그냥 인정(人情)이었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평가자와 인사팀에게 인정(人情)으로 인정(定) 받는 것이 더 중요했다.      


마지막으로, 강력하게 드는 생각, 거부할 수 없는 결론이 있다.

내 인생은 언제나 B급이었다는 거다.

태어날 때부터 S급도, A급도, C급도 아닌 B급이었다.

노력을 해도 S급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S가 되려 하면 건강 이상 등의 불운이 내게 찾아와 발목을 잡았다. 어쩌다 A급이 되어도 A급을 유지하려면 나는 남들에 비해 150% 노력해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A급을 유지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나는 게을렀고, 그렇게까지 열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욕심내며 살아보지도 않았다.


그래, B급 인생아,

잠시만 신세를 한탄 하자.

어차피 익숙한 것. 수긍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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