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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dow Feb 20. 2021

서울대 출신들과 일한다는 것

학벌 콤플렉스

우리 회사엔 서울대 출신들이 참 많다.

웬만한 임원들도 다 서울대 선후배 사이에, 나 또한 내 위를 올려다보면 모조리 서울대다.


회의를 가면 세대차이 나는 임원들의 학력고사 이야기가 오간다.

- 나 때는 문제가 쉬웠네, 어려웠네. 우리 고등학교에선 몇 명이 갔네. 

- 내 동창이 어디 사장인데 이렇다더라. 

서울대 안 나온 임원들의 굳게 다문 입이 도드라져 보인다. 


보이지 않지만 그들만의 끈끈한 유대관계도 몸소 느껴진다.


서울대 출신 부장은 퇴근하는 대리에게 엘리베이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 서울대 나왔어? 서울대 나온 나도 매일 이렇게 야근하는데, 넌 이렇게 일찍 집에 가는 거야?"


뭐 가끔 우월의식에 빠져서 쓰레기 같은 본성을 드러내는 서울대 출신도 많이 있지만, 사회에서 직장 내에서 그들의 퍼포먼스는 무시할 것이 못 된다. 일도 범접할 수 없이 참 잘하는데 겸손하고 성격까지 좋은 사람들을 보면, '그래, 저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한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서울대 나온 사람이 음악을 한다고 해도 멋있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업을 한다고 해도 멋있고,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해도 일단은 상당한 점수를 먹고 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지 않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서울대 출신이 주류다. 서울대는 무시할 수 없는 브랜드다. 그래서 우리 회사에 서울대 출신이 더 많아 보이는 걸 수도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때는 더더욱 서울대와 같이 학벌 좋은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내게 큰 콤플렉스로 다가온 적이 있었다. 괜스레 스스로 움츠러들고 아등바등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서울대랑 일할 때 수월함을 느끼고 오히려 편하다고 자각하게 됐다. 직접 겪으면서 그들이 뛰어남을 인정하고 팔로워로 포지셔닝을 하게 되어 그런 것 같다.  


1. 서울대 출신은 일을 잘 처리하고 합리적이어서 나는 그들의 지시사항이나 의견을 이해하고 잘 받아들이게 된다. 웬만해서는 이의제기를 할 필요 없고, 불만과 비판도 안 생기는 것이다.  


2. 서울대 출신 리더 중에는 인품이 좋은 사람이 참 많다. 짜증 나는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다. 인품이 좋아서 서울대를 간 건지 서울대를 가고 나서 인품이 좋아진 건지 모르겠다. 나의 멘토 두 분도 모두 서울대를 나왔다.


3. 일부의 그들에게는 어쩌면 특권의식에서 오는 너그러움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쟤는 나보다 능력이 덜 하니까 내가 더 잘해줘야 해. 가르쳐가면서 해야 해. 이해해가면서 해야 해. 이런 너그러움 말이다. 흡사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혹은 이미지 메이킹 같은. 그래서 친절하다. 


4. 서울대는 서울대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앞에서 달리는 측면이 있다. 사회에서 일단 인정을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좋은'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라면, 잘 따르면 손해 볼 것은 없다.  


가끔은 나쁜 서울대 똥을 밟는 경우도 있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서울대가 아닌 사람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럼 '모든 서울대는 속으로는 다 저렇게 비서울대를 취급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자존심도 구겨진다. 


반면 '우아~ 저 사람은 어떻게 해서 서울대를 나온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런 사람들은 다행히 조직 속에서도 큰 그릇이 되지는 못한다. 서울대를 나와서 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더 많이 욕을 먹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최근 나의 불편함은 조직 내 나 홀로 서울대가 아니란 점이다. 그때 오는 자격지심은 묵묵히 헤쳐나가야 하겠지만, 팔로워로서의 포지셔닝을 한다고 해도 여기에 또 은근한 서울대의 유대관계가 느껴진다면, 소외감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이런 감정은 서울대 사람들은 못 느끼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 이런 감정을 느낄까 봐 조심해야 하는 일부 선량한 서울대 출신들의 숙제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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