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18)_『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다쳤다. 넘어져서다. 두 팔을 모두 깁스할 수는 없기에 왼팔만 깁스를 하고, 오른팔엔 손목보호대를 끼웠다. 자판을 치는 것도 녹록치 않아서 한 손가락으로 쳐야한다. 맞다. 이 글도 손가락 하나로 치고 있다.
두 손이 자유롭지 않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씻는 것, 먹는 것은 물론이고, 뭘 하나 옮기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 같아선 집에 콕 쳐 박혀 아무 것도 안 하면 좋으련만 그것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뭔가 하려고 낑낑거려보지만 제풀에 지쳐버렸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말할 수밖에 없었다.
“도와줘.”
그런데, 이 한 마디에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 것 좀 들어줘.”“포크 좀 챙겨줘.” “옷 좀 걸쳐줘.” “이것 좀 해줘. 저것도 좀 해주고.”
사람들이 돕기 시작했고, 팔을 다치기 전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하던 일 대부분이 큰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처음엔 도와달라는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았다.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살았고, 혼자 묵묵히 해내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 며칠 나는 “도와줘”를 몇 번 했는지 헤아릴 수도 없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찰리 맥커시 글 그림, 이진경 옮김. 상상의힘)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네가 했던 말 중 가장 용감했던 말은 뭐니?” 소년이 물었어요. “‘도와줘’라는 말.” 말이 대답했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건 포기하는 게 아니야.” 말이 말했어요. “그건 포기를 거부하는 거지.”
맞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도와달라는 것은 무언가를 함께 하자는 말이라는 걸. 어쩌면 인간의 관계 맺기란 이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인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가 알아서 도와주기를 바라지만 사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결국 관계는 용기를 내는 일, 도와달라는 내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혼자 견디는 것이 옳다고 여기고 혼자 해내는 것이 더 값지다는 생각은 어쩌면 관계보다 결과를 도출하는 일에만 집착한 우리들의 왜곡된 신념일지 모른다.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우리는 많은 고립을 만났다.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하고 상대를 고립시키는 일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만나지 못하고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도와줘.”
이 말은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용기이다. 다음엔 내가 돕겠다는 의지이다. 잃어버린 관계의 회복은 이렇게 일어나게 된다.
깁스를 풀려면 아직 2주가 남았다. 나는 이제부터 좀 더 용기 내어 볼 생각이다. 도와달라고 할 것이다. 잘 기억해 둬야지. 다음엔 내가 도와주어야 할 테니. 포기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관계가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