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3)_[63일]
머리털은 흑단 같이 까맣고 윤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쌍꺼풀은 없어도 눈이 옆으로 컸으면 좋겠어요.
순해 보이게 아래로 살짝 쳐지면 더 좋을 거 같아요.
아담하게 키는 중간 정도면 좋겠고...
이런 건 다 주사로 조정이 가능하죠?
주삿바늘은 안 보이게 머리털 안으로 잘 가려주세요.
아, 다리가 좀 길었으면 해요. 비율이 중요하거든요.
너무 마르면 별로더라고요. 적당히 살집이 필요한데, 그건 제가 키우면서 잘 조절해 볼 게요.
음, 얘는 별로네요. 전 여자아이를 선호하거든요.
얘는 턱선이 고르지 않네요.
선택받지 못한 아이는 어떻게 되나요?
아, 잠깐. 말하지 마세요. 제가 알 바 아니네요.
그렇게 고르고 골라 집으로 데려온 아이는 엄마 아빠 품에서 잘 자라났습니다..
SF 영화를 보면, 자주 등장하는 장면들. 월등한 유전자를 섞어 필요한 아이를 만드는 장면. 영화는 대부분 그렇게 인간이 만들어지는 걸 거부한 영웅들 승리로 끝난다. 영화니까 다행이고 영웅이 이기니까 참 다행이다.
사람이 아니라 동물들은 어떨까? 어차피 인간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니 적당히 만들어져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팔리고' '사는' 것들이니 이왕이면 상품성 있게 만들어지는 게 동물들에게도 인간에게도 좋은 일일 거다.
이런 과정에서 검수는 필수이다. 질을 높여야 잘 팔리니 적당히 걸러내는 건 할 수 없는 일이다.
걸러진 것들을 무자비하게 다 죽이는 건 아니다. 그나마 좀 싼 값에 팔면 되는 것들은 무사히 인간의 품에 가길 바랄 뿐이다.
그럼 그 나머지는?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다음 생에는 예쁘게 만들어지길 기도한다.
세상에 분노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동물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예쁜 것만 보고 싶고 아름다운 것들만 생각하며 살고 싶다..
어쩌면 이 책을 펼치기 전, 나는 이런 생각을 한두 번쯤 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몇 날 며칠 책 표지만 들여다봤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내용을 아는 채로 만나게 된 책이고, 보고 나면 내 밑바닥을 한 번 더 흝게 될 걸 예상하기 때문에 쉽사리 펼치고 싶지 않았을 지도.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로 며칠
꺼내서 식탁에 두고 또 며칠
청소하며 그냥 책꽂이에 꽂아두고 또 며칠.
오늘에야 꺼내 찬찬히 들여다본다.
하지만, 책은 의외로 담담하다. 너무 담담해서 허탈하다. 그 얇은 허탈함에 손바닥을 베인다. 쓰라리다. 물에 닿으면 싸르르 아프다. 기분 나쁜 아픔이다. 곧 나을 테니 조금 견디면 된다.
다 낳는데 63일이나 걸리진 않을 테니까.
그러는 사이 63일 중 어느 하루일 오늘.
강아지 공장은 오늘도 빙빙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