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미숙 Jun 11. 2020

꽃은 가지에서만 피지않는다

그림책으로 본 세상 (4)_[채식하는 호랑이 바라]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호랑이 바라는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한 거다. 


‘바라는 더 바랄 게 없어요.’ 호랑이 바라는 웃는다. 춤을 춘다.


어쩌다 보니 간혹 공모사업 심사라는 걸 한다. 빠르고 편하게 심사하기 위한 방식은 떨어뜨릴 곳을 찾는 거다. 앞뒤가 맞는지, 좋은 말만 채워 넣은 건 아닌지. 지속 가능한 일인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전문가인지. “공모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보장하죠?” “왜 이렇게 구성하셨죠? 전문가는 아니신 거 같은데, 이걸 하실 수 있나요?” 대면 심사인 경우 친절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대부분 이렇게 저렇게 지속할 거고, 전문가를 모셔서 하거나 내용을 바꾸겠다고 한다. 

그런데, “떨어지면 못 하죠. 지속가능성은 보장할 수 없어요.” “전문가가 뭔진 모르지만, 제가 한 번도 안 해봤던 방식인 건 맞아요. 그런데 지금껏 해오던 것과 다르게 해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대답한 사람이 있었다. 세상에. 다 맞는 말이다. 공모사업을 신청하는 주된 목적은 예산 때문인데, 그 예산이 없으면 그 일은 못하지. 지원서 내용 또한 공모의 틀과 심사위원 구미에 맞는 것일 수만은 없다. 

언젠가부터 ‘공모사업’이 불편하다. 공모 신청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말보다 선정되기 위한 말을 찾게 된다.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하게 된다. 안 하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공모’ 형식이 아닌 지원은 찾기 어렵다. 그러니 내 말투를 고쳐야 한다. 


채식하는 호랑이 바라(김국희 글 이윤백 그림 낮은산)의 선택은 좀 다르다. 바라는 호랑이지만 사냥이 싫었다. 배고프면 어쩔 수 없이 사냥을 하는데, 깜짝 놀라 도망가는 동물들 모습은 왠지 슬프다. 며칠을 굶던 바라는 우연히 나무 열매를 먹게 되고, 그 맛을 알게 된다. 밥상을 가득 차리고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바라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흐름의 이야기는 대부분 바라의 진심이 통하고 모두가 친구가 되면서 끝나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바라는. 혼자 살기로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호랑이 바라는 웃는다. 춤을 춘다. 


우리도 바라처럼 경쟁하고 다른 말투를 써야 하는 공모사업 사냥터를 떠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 수 있을까? ‘공모사업’에 지쳐 신청서를 내지 않는 사람들은 바라처럼 웃고 춤을 출 수 있을까? 다 그렇지는 않다. 바라가 선택한 방법은 외롭기 때문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가 인정하지 않아도 혼자 해야 하고, 스스로 만족해야 한다. 누가 알아달라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고된 일이고 바라처럼 혼자 몇 날 며칠 앓아눕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사냥하지 않는 호랑이. 채식을 하는 호랑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동물들이 그런 바라를 인정하고 지지해야 한다. 바라가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땅을 내어주고 경작을 도와야 한다. 결국 ‘공모사업’의 본질을 다시 생각할 때다. ‘시민을 지원하는 것’인지 ‘활동을 지원하는 것인지’ ‘사업을 지원하는 것인지’ 공적기관은 관리자인지 협력자인지. 더 좋은 심사 방식은 무엇인지. 정산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어떤 방식이 합리적인 건지.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모사업’ 말고 다른 지원 방식은 없는지까지. 


심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벚꽃나무에서 꽃잎들이 날려 떨어진다. 후드득 떨어지는 꽃잎을 따라 발밑으로 눈을 돌리니 나무 밑동에서 핀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꽃은 가지에서만 피지 않는구나. 누구나 다 꽃은 가지에서 피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무 밑동에서 피고, 심지어 바람에 날려 떨어진 꽃잎도 꽃이더라. 외롭지만, 그렇게 핀 꽃들도 아름답더라. 

작가의 이전글 63일 현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