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구원할 수 있을까?

그림책으로 본 세상 (30) _[여우요괴 ]

by 박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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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으로 2차 대전 때 아우슈비츠로 끌려갔지만 정신과 의사의 삶을 놓지않았던 빅토르 프랑클은 말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는 시인들이 노래로 표현하고 사상가들이 궁극적 지혜로 선포한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았다. 사랑은 우리가 열망할 수 있는 궁극적인 최고 목적이라는 진리였다. 그때 나는 인간의 시와 신념이 전하는 가장 위대한 신비를 깨달았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사랑 속에서 구원받는다.’”

가장 비인간적으로 참혹한 현장에서 그는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기에 이런 말을 했을까? ‘사랑만 있으면 살만한 세상이다’라는 말은 너무 식상하고 흔한 말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 삶이 그렇다. 무엇인가 사랑하고 있고 또 무엇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면 아직 살만한 게다. 아직은.


『여우요괴』(정진호 지음. 반달)에는 하늘에서 정기 받고, 땅의 기운 담아 천하무적 도력을 닦은 여우요괴가 나온다. 간 1000개를 먹으면 무슨 소원이든 이루게 된다는 말에 여우요괴는 만나는 것들의 간을 죄다 빼 먹고 살았다. 사람 간만 못 먹어 봤다는 걸 안 여우요괴는 간 크다고 소문난 김생원을 찾아간다.


정말 간이 큰 김생원은 여우 요괴가 와도 눈하나 꿈쩍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나랑 혼인합시다.” 뭔일인지 여우요괴는 김생원과 혼인을 하게 되고 잡아먹는 것을 하루하루 미루다보니 처음으로 두려운 것이 생겼다. 결국 나이든 김생원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의 간을 먹고 소원을 성취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과연 여우요괴는 어떤 소원을 빌게 될까?(결말은 책을 보시라)

하지만, 우리는 흔히 ‘사랑’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난다. ‘내 속으로 나은 자식이니까’ ‘내 여자니까’ ‘내 남자니까’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사랑은 구원할 수 있을까?


김생원은 봄꽃놀이를 갈 때는 여우요괴를 업는다. 그리고 눈이 오는 날에는 나란히 걷는다. 손을 잡고. 여우요괴와 사람. 언제든지 잡아먹힐 수 있는 관계지만, 안전하다고 믿기에 업을 수 있고 손잡고 걸을 수 있다. 정말 간이 크긴 큰 모양이다. 그러니까 여우요괴와 함께 살 수 있는 걸지 모르겠다. 사실 여기서 ‘간’은 김생원의 자존감이다. 김생원의 자존감은 관계의 공평을 만들어 낸다. 상대가 여우요괴이지만, 기울지 않는 관계이다.


일방적이지 않고, 강요하지 않는 관계. 서로를 인정하는 관계가 되어야 비로소 사랑은 구원이 된다. 그러려면 우리에게도 큰 간이 필요하다. 자기 자존감 없이 상대에게 일방으로 끌려다니는 사랑은 결국 끝이 좋지 않다.

자존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상대에 대한 균형감을 잃게 된다. 관계를 해치고 자기 자신을 깎아버리는 것은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현재 상태를 특별하다고 여긴 결과이다. 관계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런 맹목은 균형이 아닌 일방을 낳는다. ‘내 아이니까’ ‘내 남자, 내 여자니까’ 가 가능해지고, ‘내 신도니까’ ‘내 사람이니까’라는 것도 가능해진다.


사랑이 구원이 되려면, 내 간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하고, 내 간을 소중히 여겨줄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렇다면 여우요괴든, 뭐든 균형 있는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랑은 일치를 향한 확연한 갈라섬이고 구체적인 실천이다. 그리하여야 마침내 고요의 빛나는 바다가 되고 햇살 쏟아지는 파란하늘을 만나게 될 것이다.



(2023.03.16)


* 고양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옮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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