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 가고 소소한 사랑스러운 동네에서 살고 싶다.
생각해보면,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낸 나의 동네에는 추억이 많았다. 유년시절에는 동네 친구들과 동네의 이곳저곳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숨바꼭질을 했다. 그게 공사장이든, 놀이터든 주차장이든 괘념치 않았다. 집 앞 주차장에서는 아랫집에 사는 동생과 건너집 친구들이랑 편먹고 축구를 했고, 눈 오는 날에는 열심히 눈을 굴려 집 앞에 눈사람을 만들었으며,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모여 줄넘기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고 배드민턴도 쳤다.
일요일 늦은 오전이면 엄마와 동네 목욕탕을 갔다. 대야에 샴푸와 물을 살짝 넣고 나서 빨대로 불어서 거품도 만들고 놀았다. 냉탕에서 수영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냉탕의 상어'라는 노래처럼 그 서늘함 때문에 갖은 상상이 더해져 혼자 냉탕에 있는 것을 조금은 무서워하기도 했다. 목욕 후, 늘 그렇듯 바나나우유 하나를 손에 쥐고 나왔다. 목욕탕 앞에서는 뽑기 기계가 있었는데, 목욕을 다하고 나와서 뽑기를 했다. 평화로웠고, 걱정 같은 건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유년시절은 지나갔고, 학창 시절은 한결같은 골목을 등하교 지나갔다. 우리 집은 스카이라인이 잘 보이는 주택가였고 우리 동네 근처에는 높은 건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대학까지 졸업한 사회인이 되어있었다. 평일에는 직장과 집, 주말에는 '특정한 장소'에 가서 '무엇'인가를 하는 나 자신을 깨닫게 된 건, 망원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우연히 마주친 아이들 때문이었다.
내가 사는 망원동은 응팔에 나오는 동네 같은 소소한 정이 있는 곳이다. 정감 가는 곳. 망원시장이 그 역할에 한몫을 한다. 주말 오후, 망원시장에서 장을 보고 집을 가는 골목길을 지나가다가 골목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무언가 따뜻해지면서도 그리운 풍경이었다. 골목에서 놀았던 어릴 적의 내가 생각났던 순간이랄까.
생각해보면 성인이 되고 나서 우리는 정형화된 삶을 살았던 것 아닐까. 특정 장소에서는 특정 행위를 하도록 말이다. 서울은 골목보다는 대로변이 익숙한 도시이고, 골목조차도 동네 어귀, 동네 골목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리의 어릴 적을 생각해보면 놀이터에서 놀이만을 하지 않았다. 정해지지 않은 장소에서 노는 게 더 재밌었다. 골목은 내 구역였고, 무언가 '사건'이 발생하는 재밌는 무대였다.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아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골목에서는 무언가가 많이 이루어졌다. 안도현 시인의 '모퉁이'라는 시처럼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정해진 공간에서 정해진 행위를 하게 되었다. 더 이상 어릴 적처럼 무언가 새로운 공간을 발굴하여 재밌는 놀이 같은 것들을 창조하진 않는다. 아파트와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상화된 도시에서 우리는 점점 삭막해지지 않을까.
골목이 있는 동네, 스카이라인이 잘보이는 동네, 휴먼 스케일의 동네야 말로 재밌는 일, 사랑스러운 일상이 생기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너무 좋다. 사람냄새가 나서이고,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chloe는
부산에서 태어나 살다가 서울에서 활동하는 Writer이자 라이프스타일& 공간 디자이너이다.
젠트리피케이션, 스몰 비즈니스 브랜딩, 주거문제 등 우리 주위에 사회적 이슈들에 관심이 많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들을 해왔다.
오프라인 기반인 '공간'작업과 함께 온라인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반짝반짝 빛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Instagram_ noonbus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