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나요가게
확실히 피부로 느껴지는 건 평일과 주말의 공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얼마 전, 추석을 앞둔 금요일 밤 나는 그날따라 미묘하게 세상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그날은 공기의 농도는 가벼웠고, 이상하게 날씨가 좋았다.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살짝 느껴졌으며
목소리 톤이 한 톤 올라간 것 같기도 했다. 어디선가 기분 좋은 잔 소음이 들렸고, 마음도 한결 편안해진 날이었다. 그러다가 추석 연휴가 끝난 월요일이 되면 어딘가 모르게 공기의 밀도도 높아지고, 살짝 기온도 낮아지는 것 같다. 사람들의 행동의 속도가 1.2배 정도는 빨라진 것 같고 무표정이 돼버린 것 같았다.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사람들의 에너지 같은 것들이 모여서 주변 환경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내가 사는 동네인 망원동은 주말마다 풍경이 달라진다. 주말만 되면 사람들이 몰려서 가게마다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더욱 신기했던 것 그 모습이 6개월 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어떤 카페는 수개월 동안 손님이 텅텅 비어 어쩌다 한두 테이블만 있었던 곳을 오늘 지나가 보니 손님이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길게 줄까지 있었다. SNS의 영향이 한몫했을 거다. 이상한 풍경이었다. 망원동은 앞으로 점점 더 많은 가게들이 생길 것이다.
망원동에 2016년 7월 5일에 오픈한 가게가 있다. 이 가게는 반찬가게이다. 이 반찬 가게를 인터뷰한 이유는 이 가게가 처음 시공했을 때부터 지켜본 망원동 주민으로서 어떤 곳이 생길까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멋진 건축물의 1층이 반찬가게라니 의아하기도 했다. 반찬가게는 망원시장에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요가게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저는 다양한 종류의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해요. 한 가지에 국한되는 건 재미없다고 느껴요. 그래서 다양한 요리들을 가족을 위해서 만드는걸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위한 요리죠. 나 자신이 먹는 건 가장 좋은걸 먹잖아요. 스스로 이상한 음식은 먹지 않아요. 내가 최고의 고객이죠.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한테 권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를 위한 요리 '나요'가게입니다.
멋지네요. 나요가게만의 철학이 있는 것 같아요.
네. 저는 MSG를 거의 넣지 않아요. 소스나 드레싱, 육수까지 제가 직접 만들어요. 되도록 깔끔한 반찬을 만들려고 하죠. 그리고 시장에 있는 반찬가게에서 흔히 살 수 있는 음식이 아닌 제가 직접 개발한 새로운 메뉴를 판매하려고 노력해요. 재료나 요리 방식에서 신선함을 유지도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예를 들면 마약김밥에 들어가는 재료가 김, 당근 그리고 참기름 이잖아요? 좋은 재료를 공수해서 사용하는 거죠. 당근도 제주 당근, 참기름도 직접 짠 참기름으로요. 재료를 손질하는 방법도 당근을 썰때 채칼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다 썰어요. 그래야지 단맛이 많이 안 빠지기 때문이에요. 본연을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음식을 만드려고 합니다.
나요가게를 망원동에 오픈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요. 제가 이 부지에 건물을 짓기 전에는 망원동에 이렇게 상가가 많지 않았으며, 뜨는 동네가 아니었어요. 제가 일본에서 10년 넘게 살았고 그곳에서 유학도 하고 직장생활도 했기에 서울에 대해 잘 몰라요. 그냥 단지 망원동이 아이들 키우기에 적합한 동네라고 생각해서 왔던 거죠. 지리적인 여건상 한강도 근처에 있고, 구청, 도서관, 문화센터 등 아이들을 위한 편의시설과도 가깝기도 한 게 이유였죠. 떠나고 싶지 않은 동네 같이 느껴졌어요.
왜 반찬가게를 하게 된 건가요? 일본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일본에서 교육학을 전공했고, 거기서 전공을 살려 일했어요. 결혼하기 전까진 그게 천직인 줄 알았죠 (웃음) 지금 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이었죠. 일본의 지진과 결혼이 아니었다면 이 직업을 가지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가족을 위한 음식을 정성껏 만들다 보니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제가 만든 음식이 최고라고, 우주에도 없는 음식이라고 늘 치켜세워주는 아이들 덕분에 요리가 더 재밌었고 우리 아이를 위해 어떤 음식을 더 만들어볼까 고민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성인이 된 이후에 누가 나를 최고라고 칭찬하는 게 드물잖아요? 아이들이 저를 그렇게 만든 거죠.
그러다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니 학부모들과 정보 교류를 하면서 평소에 무슨 반찬을 해 먹는지 얘기를 하곤 했는데, 그때 제 노하우를 학부모들에게 공유를 했어요. 애들이 밥 먹는 걸 싫어한다 그러면 같이 음식을 만들어 보라고 조언하기도 했고 아이가 고추장을 안 먹는다 하면 초고추장처럼 묽게 해봐 라는 조언 같은 것들이 요. 겨울에는 특히 아침 먹을 때 국을 준비하는 게 좋아요. 애들이 국을 안 먹고 나가면 부들부들 떠는데 아침에 밥이랑 따뜻한 국물을 먹고 가면 몸이 따뜻해지면서 춥지 않거든요. 그런 식으로 팁을 주다 보니 엄마들이 반찬 만들 때 같이 만들어 판매하라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작게 시작했죠. 그렇게 3~4분께 팔다가, 지인 소개가 들어오고 하다 보니 어느새 가게 오픈전에 4-50명의 손님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반찬가게이자 한식 가게를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서 건물 1층에 오픈하게 됐죠.
(순서대로 새우마요/ 황태강정/ 마약김밥 ,국물떢볶이/ 토마토 샐러드)
나요가게의 대표 메뉴가 있나요?
아직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시험적으로 해보고 있어요. 우선 반찬은 기본으로 판매하는데 안주류를 팔지 식사류를 팔지 생각 중입니다. 손님들이 원하는 쪽으로 판매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러 가지 메뉴를 만들고, 새로운 종류를 고민하고 개발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메인은 반찬가게예요. 새로운 종류의 반찬 덕분에 손님들이 신기해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뿌듯하기도 하고요. 지금 현재 마약김밥이랑 삼 찬이 가장 잘 나가요. 삼찬은 세 가지 반찬이라는 뜻인데 매일 반찬 종류가 달라져요. 예를 들면 닭고기 버섯 간 정조림, 오징어 브로콜리, 야채 계란말이, 완자탕 이런 메뉴예요. 그것 말고도 아이들을 위한 소풍 도시락, 우엉 샐러드, 치킨 카라 야케도 잘 나가고 있어요. 제 음식은 일반적인 반찬가게에서 판매되는 종류가 아니라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한식과 일식을 적절히 버무린 것들이 많아요. 손님들도 새롭고 신선한 반찬을 먹으니 좋아하시기도 하고요.
아직 생긴 지 얼마 안 된 가게이기 때문에 재밌기도, 부담스럽기도 해요. 하지만 '나요가게'라는 이름처럼 제 의지가 담긴 음식을 판매하려고 합니다.
chloe는
부산에서 태어나 살다가 서울에서 활동하는 Writer이자 라이프스타일& 공간 디자이너이다.
젠트리피케이션, 스몰 비즈니스 브랜딩, 주거문제 등 우리 주위에 사회적 이슈들에 관심이 많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들을 해왔다.
오프라인 기반인 '공간'작업과 함께 온라인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반짝반짝 빛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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