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을 걷고, 또 걸으며 생각했다.
청량한 가을 햇살, 쾌적한 바람,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 나무위의 작은새, 잎사귀가 흔들리는 나무, 다양한 표정들의 건물들. 아무리 IT가 발달하더라도 물리적인 현상세계의 존재는 우리에게 여전히 소중하고 중요한 터전이다.
쾌적해진 날씨탓에 기분이 좋아 연희동 산책을 가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연희동을 가기로 마음먹은건, 정말 우연한 일이었다. 얼마전 망원동에서 버스를타고 익선동으로 갈일이있었는데, 그때 버스가 연희동을 지나갔다. 버스안에서 본 연희동은 너무나 평화롭고 소박해보였고, 어쩌면 서울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바로 지도어플을 켜서 살펴보니,그곳이 연희동이었고 나는 그래서 연희동으로 가게되었다.
망원동에서 걸어서 연희동까지 가보자고 계획했는데, 꽤 오랜시간 걸었던것 같다. 연희동의 주말은 서울의 도심과는 다르게 여백이 있었다. 연희동은 역세권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직은 젠트리피케이션이 크게 일어나진 않은것 같았다. 그래서 좋았다. 하지만 이렇게 매력있는 동네는 더 뜨게 될거고, 지금보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것이다.
연희동은 힙한동네의 대부분의 조건을 갖추었기때문에 매력있다. 물론 역세권이 아니라는점, 강남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직 핫한 동네는 아니다
그렇다면 연희동의 진짜 매력은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을까?
우선,
연희동은 세월이 만들어준 골목의 아름다움이 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돈으로 살수없는것들이 꽤 존재하는데 오래된 골목이나 건축도 그런것같다. 시간의 흔적이 뭍어나는 골목이나 건물을 보면 왠지 정감있게 느껴진다. 오래전부터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조금씩 자신의 흔적들을 새긴 골목은 볼거리도 쏠쏠하다. 한강이남권에서 흔히 보는 똑같은 표정의 빌딩숲이 아니라, 창문의 위치, 크기, 문의 생김새, 독특한구조의 건물, 저마다 각각다른 물성의 건축자재들, 들쑥날쑥한 식물들, 건물들위로 보이는 넓고 푸른 하늘, 각도와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는 스카이라인 같은 것들이 보는 재미를 느끼게한다.
주택가라 주말이면 접시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리코더 부는소리, 한적한 거리, 안정된 공기의 농도 이런것들은 소소한 동네에서 느낄수 있는 풍경들이다.
두번째로,
연희동은 작고 소소한 가게들이 드문드문 있어서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존재감을 내세우는 가게들이 아니라, 동네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색감, 크기, 분위기를 가진 가게들이 곳곳에 있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똑같은 얼굴의 프렌차이즈보다 자신의 취향이 녹아있는 소규모의 가게들이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여유롭고 느긋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욕구가 있다. 치열한 서울에서 조금은 벗어나 작은 사치를 누리고 싶어한다. 하늘이 잘보이고 식물이 곁에 있는 그런 생활을 꿈꾼다. 그래서 제주도로 요즘 많이 가는지 모르겠다. 그런 삶은 여백이 있는 공간과 잘맞아 떨어진다. 넓은 하늘과 푸른잔디같은것은 빽빽하게 솟아있는 빌딩숲에서 유일한 여백이다. 그래서 나는 연희동이 좋은지 모르겠다.
가끔은, 여행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그것들이 당신의 삶에 새로운 영감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니 걷고 또 걷자. 연희동의 주말처럼.
chloe는
부산에서 태어나 살다가 서울에서 활동하는 Writer이자 라이프스타일& 공간 디자이너이다.
젠트리피케이션, 스몰 비즈니스 브랜딩, 주거문제 등 우리 주위에 사회적 이슈들에 관심이 많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들을 해왔다.
오프라인 기반인 '공간'작업과 함께 온라인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반짝반짝 빛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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